‘암각화에서 선사인들의 정신세계ㆍ미의식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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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에서 선사인들의 정신세계ㆍ미의식 엿본다’
  • 이원석 기자
  • 승인 2009.05.1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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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대학 천전리 각석, 간월사지, 통도사 답사

문자시대 이전 선사인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정신세계ㆍ종교관ㆍ미의식까지 보여주는 암각화.

1970년 동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 이어 다음해 울산 대곡리, 포항 칠포리(1989), 영천 보성리(1993) 등 15군데서 발견됐다.

▲ 천전리 각석

천전리 각석(刻石)은 내용상 선사시대 점각기하학적(點刻幾何學的) 문양과 각종 동물상이 새겨진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선각화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뉜다.

윗부분에는 쪼으기와 갈기 수법으로 된 사슴 등을 비롯한 동물들과 기하무늬들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가는 선각의 글씨들과 인물 및 동물 또는 기하무늬들이 쪼아파기와 긋기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 공룡발자국

아랫부분에 있는 명문은 오른편의 원명(原銘)과 왼편의 추명(追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밖에 제명(題銘)이 다량 보인다. 신라 법흥왕 때의 기록으로 6세기 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간월사지

17일 열린 경주박물관대학 답사에서 학생들은 이범교 답사지도위원으로부터 천전리 각석에서 2시간여에 걸쳐 암각화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건너편에 남아있는 공룡발자국을 구경한 뒤 간월사지로 향했다.

▲ 간월사 불상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의 간월산(澗月山) 북쪽 기슭에 위치한 간월사는 신라 진덕왕 때의 고승인 자장율사가 당나라로 유학가기 전 또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 간월사 범종

창건 초에는 대찰의 면모를 갖췄지만 임진왜란 때 왜병들에 의해 파괴돼 폐사됐던 것을 인조 12년(1635)에 명언(明彦)이 다시 지었으나 헌종 병신년(1836)에 큰 흉작 때문에 다시 폐사됐다.

▲ 간월사 서탑

절터에는 보물 제370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한 금당지와 동ㆍ서 삼층석탑이 남아있다.

▲ 통도사 당간

이날 마지막 답사지는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 중 불보사찰(佛寶寺刹)인 양산 통도사였다. 성보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보기 위해서인지 휴일을 맞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 영축산통도사

전국의 모든 승려들이 이 절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하고 만법을 통달해 중생을 계도하며 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고 해서 절 이름을 통도사로 지었다고 한다.

▲ 영축총림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가지고온 불사리(佛舍利)와 가사(袈裟),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大藏經) 400여함을 봉안하고 창건했기 때문에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됐다.

▲ 성보박물관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신라시대의 전통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했으며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ㆍ중로전(中爐殿)ㆍ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진다.

▲ 적멸보궁

본래 이 절터에는 큰 못이 있었고 이 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으나 자장율사가 이들을 제도하고, 한 마리의 용을 이곳에 남겨 수호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금강계단 앞에 새겨져 있는 용꼬리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뒤쪽에 있다는 용의 머리는 불심이 좋은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나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영천뉴스24 이원석 기자 ycnews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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