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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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샘
  • 시인 장병훈(편집위원)
  • 승인 2009.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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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샘

                           김성규

돼지의 멱을 따자 피가 쏟아진다
칼은 부드러운 살을 헤집고
더 큰 물길을 찾는다

붉은 물, 반짝이며 쏟아지는
붉은 물, 이빨 빠진 노인들이 웃는다
바들바들 떠는 돼지
혓바닥이 말려들어간다
온몸의 소리가 빠져나간다

주머니처럼 매달린 간을 삼키며
노인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초상집 뒤뜰
양동이에 가득 담긴 핏덩어리
더 이상 피를 뱉지 못하는
돼지의 살갗에 뜨거운 물이 부어진다

울음이 빠져나간 육신(肉身)을 위하여
노인들은 한번 씩 붉은 샘을 판다

슬프다. 살아가는 일이 남의 살점을 씹으면서 행복해야한다니.

“주머니처럼 매달린 간을 삼키며, 노인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불행의 육신을 통해서 그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대는 ‘더 이상 피를 뱉지 못하는, 돼지의 살갗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는 상황까지 머릿 속에 그리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참, 시인은 이상한 사람들 맞다. ‘울음이 빠져나간 육신을 위’해서라도 시를 써야 하는 노릇이니.

그대, 가끔 시인의 가슴을 빌어서 슬픔의 ‘붉은 샘’ 한 번 씩 파본다면 삶이 조금은 깊어질 것이다.


시인 장병훈은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동리목월문학관의 ‘詩作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화룡동 산 7번지의 선화여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문학동아리 ‘좁은문’지기를 하고 있다.

* 영천뉴스24 블로그인 <별빛촌닷컴>(http://www.01000.in)을 방문하면 장병훈의 <시와 연애를 하자>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영천뉴스24 장병훈 편집위원 sii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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