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9일간의 전투, 영천전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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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9일간의 전투, 영천전투를 기억하며
  • 국립영천호국원 현충과 현충팀장 남혜경
  • 승인 2023.09.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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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3주년이 되는 해이자,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3년간의 전쟁으로 전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 당시 전쟁의 잔혹함과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엔 7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사람들로부터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6월 6일 현충일과 6월 25일 6‧25전쟁일이 있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무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그 분위기마저 점점 사라져간다.

하지만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9월이 되면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국립영천호국원이다. 호국원에서는 9월이 시작되면 영천대첩기념식 준비로 분주해진다. 6‧25전쟁 당시 영천전투의 종결일인 9월 13일에 호국원 경내에 있는 영천대첩비 앞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나라사랑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영천대첩기념식’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영천전투는 6‧25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전쟁 발발 후 최초로 국군이 대승함으로써 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역사적인 전투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제8사단의 전공을 치하하며 ‘영천대첩’ 이라는 전승기념 칭호를 명명하였다.

전쟁 초기 북한은 우리 군엔 단 한 대도 없었던 전차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남으로 남으로 진격을 거듭하였고, 치열한 지연전을 거듭하면서 철수하였던 우리 국군과 UN군은 1950년 8월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방어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전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던 중 다부동 방면 돌파에 실패한 북한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낙동강 방어선의 유일한 보급로였던 영천으로 공격방향을 바꾸게 된다. 영천은 지리적으로 대구와 경주, 포항을 연결하는 지역으로 함락 될 경우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부산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다.

영천대첩은 국군 제8사단을 주축으로 국군과 미군과 합세하여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5사단을 비롯한 주공 부대(적의 주력을 치는 주력 부대)를 상대로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치열한 공방을 거듭한 끝에 북한군 제15사단을 궤멸시켜 승리를 거둔 최초의 국군 대승으로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과 UN군의 총반격 작전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를 두고 김일성은 영천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포성이 사라진 지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의 자유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70여년 전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호국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어진 값진 결과물이다.

지금과 같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호국영웅들을 위해 6‧25전쟁에서 정말 중요했던 영천전투의 흔적을 찾아 국립영천호국원과 호국원 바로 옆에 있는 영천전투호국기념관을 방문하여 감사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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