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천대첩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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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영천대첩을 기억하며…
  • 국립영천호국원 현충과장 노현주
  • 승인 2022.09.0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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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고경면에 위치한 국립영천호국원은 6·25전쟁과 월남전 등에 참전하셨던 5만여분의 호국영웅들이 잠들어 계신 호국의 성지이다. 호국원 입구에 들어서면 12만여평의 대지가 한눈에 펼쳐지는 가운데 2만여분들이 안장되어 계신 봉안묘역과 3만여분들이 계신 충령당1,2관(봉안당)이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는 현충탑이 위치해 있고 주차장 맞은편으로 6·25전쟁 기간 중의 여러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전투였던 영천전투에서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한 영천대첩비가 우뚝 솟아 그 위상을 드높이 드러내고 있다.

6·25전쟁 초기 북한은 우리 군엔 단 한 대도 없었던 전차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남으로 남으로 진격을 거듭하였고, 치열한 지연전을 거듭하면서 철수하였던 우리 국군과 UN군은 그해 8월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방어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전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던 중 다부동 방면 돌파에 실패한 북한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낙동강 방어선의 유일한 보급로였던 영천으로 공격방향을 바꾸게 된다. 만약 영천이 함락되면 아군 조직이 분리되어 결과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나아가 부산까지 상실하게 되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고 영천이 적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UN군은 전쟁에서 철수하고, 미국 정부에서는 남태평양의 서사모아에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구성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영천대첩은 제8사단을 주축으로 국군과 미군이 합세하여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5사단을 비롯한 주공 부대를 상대로 1950년 9월 4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 치열한 공방을 거듭한 끝에 북한군 제15사단을 궤멸시켜 승리를 거둠으로써,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과 UN군의 총반격 작전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에 매년 9월 13일 국립영천호국원내 영천대첩비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며 영천대첩의 가치를 되새기고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며 전후세대의 호국안보의식을 함양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년동안 기념식을 개최하지 못하였으나 금년에는 추석연휴 전인 9월 7일 기념식을 개최하고 영천대첩의 의의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자주국방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어 1950년 6·25전쟁 발발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하셨던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이에 자녀들과 함께 인근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추모와 감사의 시간,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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