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감회 - 살아나는 실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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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감회 - 살아나는 실핏줄
  • 권대섭(전 프레스아리랑 대기자)
  • 승인 2022.05.1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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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강 능계천변에 맑은 물이 돌아올까
용탕바꾸미 덤방구에도 물흐를 날 기대

고향강을 사람들은 개천이라 하고, 사투리로는 거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강이라는 말로 격상시켜 부른다. 우리 선조들과 내 어린 벗들의 근원이 된 산에서 나와 그 선조들과 우리 고향사람들, 내어린 벗들과 나를 키워낸 물이기 때문이다.

그 물을 담아 흐르던 우리 고향강은 언제나 맑은 물에 하얀 돌자갈과 황금모래사장, 녹색 잔디밭을 끼고 있었다. 그 물엔 모래무지 꺼덜뭉치 송어 피리 꺽자구 노고지리 뿌구리 텅갈래 텅수 메기 징거미 고디로 불리던 온갖 물고기와 생명들이 살았다. 물가엔 물총새가 날아왔고 검정물나비도 날았다. 모래밭엔 뻐꾸기라 불린 개미귀신이 작은 구덩이 함정을 만들어 지나가는 개미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공깃대라 불렀던 야관문과 개똥쑥 인진쑥 약국대 개멀구 등이 지천에 가득했다. 향기 찐한 작은 풀 나무들, 이름모를 꽃들도 수두룩했다. 그곳 강물 속이나 강변은 언제나 나와 내 어린 벗들과 우리 마을 집집마다 한 마리씩 있던 소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멱을 감거나 물고기를 잡았고, 소들은 풀을 뜯었다.

온갖 풀들 돌삐들 천지였던 곳

5월 6일경 능계천변 모습

그랬던 고향강이 어느 순간, 갈대 무성한 뻘밭이 되어 갔다. 농촌 인구가 줄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소가 사라져 발길이 뜸해진데다 도로포장과 도시 아파트건설에 쓸 골재용 자갈을 걷어가면서 부터였다. 상류에 설치한 댐도 고향강 황폐화에 한몫했다.

우리 고향강의 돌과 모래들은 단단하고 야물었다. 각양각색 아름다운 무늬들... 고양이처럼 생긴 돌, 자동차처럼 생긴 돌, 권총처럼 생긴 돌도 있었다. 깨지지 않는 차돌과 잘 깨지는 돌도 있었다. 어떤 돌은 색연필처럼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돌삐'라 불렀다. 모양을 묘사하자면 일만가지도 넘는다. 똥그리한 돌, 똥굴똥굴한 돌, 낄쭉한 돌, 질쭉한 돌, 빼쪽한 돌, 삐죽한 돌, 울통불퉁한 돌, 매끄리한 돌, 맨들맨들한 돌, 꺼끄리한 돌, 까칠까칠한 돌, 커다란 돌, 쪼매난 돌, 구멍송송뚤린 돌, 그림 그린거 맹키로(~처럼) 무늬 있는 돌...

색깔이 허연 돌, 뿔그스름한 돌, 까만 돌, 꺼무스름한 돌, 수도 없이 각색각양 천지삐까리 돌이었다. 만장같던 자갈밭, 하얀 자갈밭, 돌삐(돌)들 세상이었다.

아름답던 자갈밭, 강변에 돌삐들이 사라진지 수십년. 우리 고향강은 아이들 키워내어 도시로 보내고, 소도 키워내더니 어느새 아이들 친구였던 돌삐들과 자갈밭까지 도시와 문명에 내주고 있었다.

돌삐와 자갈밭이 사라지자 모래사장도, 잔디밭도, 물도 말라들었다. 그곳에 살던 온갖 물고기와 새와 나비와 풀들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무성한 갈대밭 진흙뻘이 쌓이기 시작했다.

고향강은 농민들이 버린 폐기물과 농사에 썼던 비닐조각들이 갈대밭에 걸려 허옇게 흉한 모습이 되어갔다. 아이들과 소들을 키워내고, 도시와 문명을 위해 모래와 돌삐들을 아낌없이 내어준 고향강이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이었다.

유채꽃은 부활 신호탄?

그랬던 고향강. 죽어가던 고향강에 희망이 찾아온 것일까. 5월초에 찾은 고향 능계천(안천변)이 살아나고 있었다. 갈대가 걷어지고, 진훍뻘도 사라진 채 바닥 암반이 드러나 있었다. 약간의 자갈도 형성되어 있었다. 갈대 대신 노란 유채꽃이 무리지어 있었다.

예전에 공깃대와 따불떼기, 물약국대와 모래사장, 잔디밭과 자갈과 돌삐들이 하얗게 또는 푸르게 섞여있던 곳이다. 지금은 유채꽃 천지가 되었지만 이것만도 어디인가. 가을엔 아마도 코스모스가 덮을 것이다. 고향강 부활의 신호탄으로 보고 싶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우리 고향강도 시대에 따라, 산업화와 문명화와 도시화와 사람과 삶의 변화에 따라 우여곡절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의 변화는 그전 수수만년 진행된 자연적 변화와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고향강에 강요했다.

그것은 인간의 편의만 생각한 자연파괴였으며, 궁극적으로 인류파괴를 초래한 위험한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조금 깨달은 모양으로 찔끔찔끔 자연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의 고향강을 살리자

이젠 그러지 말자. 더 과감히 자연에 투자해야 한다. 능계천변은 작년부터 영천시와 화남면이 준설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6일 임진란 한천승첩 기념행사에서 만난 정해동 화남면장이 전해줬다. 지난해 금호동 중리앞 고현천에 쌓인 폐기물을 권세황 동장과 함께 깨끗이 치운 면장님이다.

전국의 고향강은 우리국토의 실핏줄이다. 실핏줄이 병들면 정맥과 동맥이 병드는 법이다. 곧 국토가 병드는 것이다. 능계천변 회복이 농업 쓰레기와 진흙뻘밭화로 병들어가는 전국의 고향강을 살리는 모델이 되기를 희망한다.

능계천에 물고기가 돌아오고, 그곳 용탕바꿈이 덤방구(바위)아래 물이 다시 흐르면 옛 용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농촌인구도 다시 늘어 행정구역 소멸의 위기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더불어 우리문화의 뿌리인 고향 향토문화도 면면한 맥을 잇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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