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60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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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60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4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20.0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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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의 사상

요시다 쇼인의 어록에는 “뜻을 세운 사람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죽어도 개의치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 - 결국 그의 이러한 과격한 발언과 에도막부 요인 암살이 일본 내에서조차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를 심었고 그의 죽음 또한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

 “지성(至誠)으로 최선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 그의 지성(至誠)은 조국 일본 근대화로의 변혁에 대한 것으로 후대에도 큰 울림이 된듯하다 -

ㆍ요시다 쇼인의 좌우명 - 지성(至誠)

ㆍ이토 히로부미 좌우명 - 지성(至誠)

ㆍ아베 총리의 좌우명 - 지성(至誠)

이는 아베 총리가, 이토 히로부미가 같은 야마구찌겐(山口県) 출신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을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베는 총리 당선 후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맹세를 했다. 이러니 한국에서 아베 총리를 극우주의자로 매도를 하는 것이 역사적 근거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요시다 쇼인! 일본인이 아닌 우리는 역사 속 그를 어떤 인물로 규정해야 할 것인가? 국민적 감정을 억누르면서 학문의 신인가? 테러리스트인가? 근대화의 혁명가인가?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었고, 20대 초반 지적 허기를 느끼며 약 3년 반 동안 학자들과 교류하며 1만 3천리를 유람했다. 근대화에 대한 배움의 열정으로 페리 제독의 흑선이 왔을 때는 불법 승선해서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싶다며 미국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를 하기도 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를 없애고 천황을 중심한 존왕양이의 메이지 시대를 열기 위한 기초를 닦았다.

요시다 쇼인은 후에 서양을 알자는 <유수록>을 남겼다. 내용적으로는 홋카이도 개척과 여러 식민지론, 우리가 많이 아파하는 <정한론>도 담겨있다. 이러한 사람을 단순히 혁명을 이루는 과격했던 과정만 가지고 테러리스트로 규정을 지을 수 없다. 이는 일본인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그를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이요, 일본을 사랑한 행동하는 혁명가>였다고 기억하고 싶다.

요시다 쇼인! 참으로 일본에서는 대단한 위인이다. 일본 국내 학자들 속에도 다소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위인으로서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역사 속 업적은 유적의 숫자로도 나타난다. 도쿄도와 오사카부, 교토부, 전국 26개 겐에 걸쳐서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역사유적이 163개가 있다. 쇼인은 죽었다. 그러나 일본 근현대 우익사상의 정신적 뿌리로서 그는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일본 최장수 현 총리 아베로 이어진 요시다 쇼인의 사상적 계승은 그만큼 뿌리가 깊다.

일본은 식민지화에 앞서 조선을 알기 위해 유승룡 선생의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실화 <징비록>을 지식사회에 넓게 공유를 했다. 우리도 늦게나마 반복된 역사를 피하기 위해서 요시다 쇼인의 <유수록>을 보며 그들의 역사를 배우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승리하고자 하는 자는 모든 병법서에서의 가르침과 같이 감정을 앞세우면 이길 수 없다.

지피지기는 어느 시대고 필요했다. 마치 손자병법서가 현대에서도 전쟁의 고전으로 남아 트럼프가 읽고 있는 것처럼~ 오늘도 ‘지피지기’라는 소리는 눈 덮인 후지산에 부딪혀 우리에게 메아리로 들려오고 있는 듯하여 나는 귀를 기울인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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