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53> 일본의 신사(神社)
상태바
<박정석의 도쿄통신 53> 일본의 신사(神社)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19.10.10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아키히토 前 천황(上皇)을 존경한다. 우리는 때때로 일본인의 신앙에 있어서 샤마니즘적으로, 21세기에 있어서 후진적인 종교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많다. 이는 그들이 신사마다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기에, “나 이외에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는 세계 주류의 유일신 종교 기준으로 보면 힘이 없는 하찮은 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일본의 신사는 유명한 역사속 인물을 모시기도, 동물신을 모시기도, 심지어 유명 장군의 갑옷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각지에는 한반도 출신의 신을 모신 신사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도쿄 옆 사이타마겐에 고구려 왕족 출신 <약광장군신>을 모신 고마신사가 있다. 일본에서는 각 신사에는 특별한 능력으로 효험이 있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이 고마신사에 참배하면 총리가 된다는 운은 국회의원이 방문 후 총리가 여러 명이 되었기에 붙여진 신사의 명예이기도 하다. 이러하다보니 출세, 개운 등으로 유명해졌다.

일본 역사 속에, 근대사에 있어서 감히 아키히토 천황만큼 분명히 우리 한반도(백제)인의 프라이드를 세워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곳에 2017년 9월 20일 약 3시간 가량 아키히토(明仁) 천황 부부가 개인 자격으로 찾았던 것이다. 사이다마현(埼玉県) 히다카시(日高市)의 고마신사(高麗神社)를 찾은 이 소식은 일본에서도 뉴스화가 되었으나 한국에서 더 크게 보도됐다.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68세 생일 때 황실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천황가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폭탄 발언을 한 것이 관심을 더 갖게 한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2015년 한일수교 50주년 기념으로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된 금동반가사유상을 관람도 하는 등 늘 한국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기에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온다.

이러한 역사적 관심의 씨앗일까? 당시 아키히토 천황을 약 3시간 영접하고 안내 한, 고구려의 약광 장군의 60대손, 고마후미야스(高麗文康)ㆍ宮司구지(신사의 제일 높은 지위의 책임자) 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나루히토(徳仁 : 현재 천황) 황세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마신사(高麗神社)를 찾았고 역사학 공부를 했다.”

고마신사는 7세기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인 왕족의 ‘약광(若光)’ 장군을 신으로 모신다. 약광 장군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일본으로 구원군을 청하러 왔다가 거절당했다. 이때 일본은 군사상 지원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 후 돌아가지 못한 약광 장군은 함께 온 사람들과 망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국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백제인, 고구려인을 모았다.

당시의 넓었던 무사시노(武蔵野) 지방에 일본국 내의 제법 큰 고마군(高麗郡)이라는 마을을 세웠다. 행정구역의 명칭은 일본의 여러 역사 지우기와 마찬가지로 히다카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속 고유명사는 고마가와(高麗川)역, 고마(高麗)소학교, 고마(高麗)찌개(김치찌개와 비슷) 등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고마 지역에선 당시 그릇이 많이 발굴돼 도래인의 영향으로 도기와 가마 문화가 발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고마신사는 원래 이 지역의 신을 모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역사적 인식이 깊지 않을 정도로 일본문화 속 일상화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당시에 망명한 약광 장군의 바뀐 성씨였을까? 고마(高麗)성씨의 후손도 남아있다.

고마신사(高麗神社)에는 재일본 한국인 단체 민단이 가끔 큰 행사를 하기도 하며 관계자가 자주 찾기도 한다. 신사 입구에는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서 민단중앙본부에서 기증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2개가 다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기념식수를 한 나무도 있다.

책임자인 고마후미야스(高麗文康) 씨는 “아키히토 천황이 일본의 고대사 가운데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원래 어류학(魚類學) 박사이며 학자다. 고마신사에 방문하기 일주일 전에는 도래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를 불러 따로 수업을 받는 등 특별히 방문을 준비하신 것으로 들었다고도 했다.

이제는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살아생전 스스로 물러나 상황(上皇)이 되었다. 이렇게 한반도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천황이 앞으로도 계실까?를 생각할 때 짠하게 다가오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가 우리들 가슴을 뜯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아키히토 前 천황(上皇)을 존경한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