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3> 전설의 검객 60戦 全勝 ‘미야모토 무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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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3> 전설의 검객 60戦 全勝 ‘미야모토 무사시’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17.11.0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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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피(血)를 흘리고 득도(道)를 한 검객’

ㆍ출생 : 1583년 전후 ~ 1645년
ㆍ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검객의 집안 양자로 지금의 오카야마에서 태어나 에도시대에 사망했다.
ㆍ친자 없음(양자 있음)
ㆍ묘소 : 구마모토

무사시는 어려서부터 거칠은 성격의 아버지께 학대를 받으며 검법을 배웠지만, 10세가 되던 어느 날 아버지의 살기를 느끼며 결국 집을 나가서 친척집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그리고 13세 때 마을에서 어른과 첫 결투를 하여 상대를 죽이자 그 동내에서 떠나, 그 때부터 방랑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아버지와의 아픔의 상처 때문일까 나중에 외가 쪽의 성을 사용하여 미야모토 무사시라고 칭하였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집을 떠난 13세부터 29세까지 60여 차례의 전국 유명 검객과의 진검 승부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하는 전설이다. 또 하나는 두 자루의 칼을 사용하는 니텐이치류 검법의 창시자였다. 그는 필승에 대한 집념은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1603~1867년까지가 에도시대였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봉건시대였다. 성인이 된 시점부터 한평생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혼란기를 정리해가는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ㆍ무사시의 제일 유명한 칼싸움은 29세 때 벌린 간류지마(巌流島)결투였다. 규슈 고쿠라小倉의 사사키 고지로는 당대 日本一의 검객이었다.

ㆍ1612년 사사키 고지로와의 결투!

무사시는 특유한 나름대로의 전법의 하나로 결투 장소에 늦게 등장하여 먼저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착하자 바닷가에서 무사시는 태양을 등지며 상대를 악조건으로 만드는 전략 또한 칼잡이로서의 지혜로 평가 받는다. 가정환경과 지금까지의 인생이 너무도 비슷한 당대의 칼잡이 사사키 고지로를 그는 젊음이라는 힘과 진정한 실력으로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 간류지마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동산

그렇지만 이긴 무사시는 마치 패자처럼 도망치다시피 섬을 떠났다. 고지로를 죽인 후 뒤쫓는 입장에서 쫓기는 입장으로 전환되어, 언제 젊은 무사로부터 도전에 직면해 죽음에 이르게 될지 모르는 시대였기 때문에 공포와 고독 그리고 무념이 밀려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피로서 최고에 오른 순간 인생관이 바뀐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무사시가 깨달은 것은 “검은 마음의 굶주림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 무사시는 10년 동안 행방불명이 되어, 전국에 절만 다니면서 수양을 하는 시간도 갖는다. 결국 고향에 돌아가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자의 공양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검객으로서의 인생을 생각게 하는 계기는 나고야 성주로부터의 병법지도자라는 사관 자리에 오르기 위한 시험을 받게 된다. 무사시는 당연히 이겼지만 거기서 최고봉의 칼잡이로서 평가가 아닌 칼잡이로서의 인격의 道가 모자람을 지적당하며 결국 큰 깨달음을 얻는다.

1634년 50세가 된 무사시는 고지로가 소속했던 규슈 고쿠라藩에서 생활하게 되고, 3년 후 1634년 기독교인들의 폭동이 일어나 진압시키기 위해 출동한 무사시는 상상치도 못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웃으면서 죽어가는 그들을.

완전히 인생관이 바뀐 무사시는 말년에는 구마모토 번에서 『오륜서』, 『독행도』 등의 책을 펴냈는데 『오륜서』 는 해외에서도 출판되기도 하였다. 체력이 떨어진 말년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느낀 점에 대한 훈계서인 『독행도(獨行道)』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 미야모토 무사시가 간류지마에 타고 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목선

그는  검술뿐 아니라 번사들과 함께 연가(連歌), 그림, 다도 등을 즐겼다고도 전해진다. 특히 수묵화와 공예품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도 되어 있다.

무사시는 『오륜서』에서 우주를 성립하는 요소 다섯 가지를 ‘地’ ‘水’ ‘火’ ‘風’ ‘空’으로 나누어, 특히 마지막 ‘공’에서,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마음 세계가 있다”는 것을 기재하고 있다.

1645년 화려했던 日本제일의 칼잡이 무사시는 절에서 영민하게 된다. 향년 62세였다.
무사시묘ㅡ구마모토 熊本県熊本市北区

결론적으로 미야모토 무사시가 和의 민족 일본인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머물며 존경받는 이유가 60전 전승의 결과 만은 아니었다. 중년이후 특히 만년에 큰 깨달음으로 칼로서는 다 채울 수 없는 인생!
그것을 道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문학을 남겼고, 大검객으로는 보기드문 문무를 겸비했음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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