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자집, 재매정, 요석궁 … 엑스포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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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자집, 재매정, 요석궁 … 엑스포 관람
  • 이원석 기자
  • 승인 2007.10.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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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향토사연구회 경주로 떠난 답사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재산을 만석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과 밭을 사지마라, 며느리는 시집을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로 10월 정기답사를 떠난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임괄) 회원들은 경주 최부자집에서 가훈을 읽으며 왜 최부자가 부자이면서도 인심을 잃지 않고 주위에서 존경을 받으면 살 수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지난해 8월 5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37평 규모의 사랑채를 원형대로 복원한 최부자집은 중요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시대 요석궁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경주 최씨 종가집인 이 가옥은 1970년 11월 화재로 별당과 함께 사랑채가 불탔으나 그 동안 예산부족 등으로 방치돼 왔다.

특히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었던 경주 최씨 종가집의 사랑채에는 많을 때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수많은 일화와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사적 제246호인 재매정은 1.5m가량의 사각형 우물로, 우물가에는 1872년에 세워진 비각이 있다.

644년(선덕여왕 13)에 소판(蘇判)이 된 김유신은 연달아 여러 차례 백제와의 싸움에 출정했는데, 싸움터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족을 만날 틈도 없이 곧장 다른 싸움터로 보내지는 일이 거듭되었다.

645년 3월에도 김유신은 싸움터에서 귀환하자마자 다시 서쪽 국경으로 출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집 문 앞을 그냥 지나가게 되었는데, 50걸음쯤 가다가 멈춰서 자기 집 우물에서 물을 떠오라고 시켜 마셨다.

그러고는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라고 말한 뒤 계속하여 길을 갔다. 이렇게 가족과의 이별을 한탄하지 않고 의연하게 싸움터로 나가는 김유신의 태도는 이를 지켜보던 군사들에게 귀감이 되어 그들을 싸움터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 열전 제1 김유신 상’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왕궁인 월성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사적 제457호 월정교(月精橋). 통일신라 최전성기인 경덕왕19년(서기 760년)에 건설된 대규모 다리인 월정교는 왕궁인 월성에서 남단으로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주시는 내년초부터 시작하는 월정교 복원이 마무리되면 일정교(日精橋)를 추가로 복원해 월성과 월정교, 인용사지, 일정교, 경주박물관을 있는 신라의 옛길도 조성할 계획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관람하고 회원들은 오랜만의 역외답사를 나치고 돌아왔다.

영천향토사연구회 이임괄 회장은 “엑스포 관람과 함께 연말에 발간할 골벌지 출간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답사코스를 경주로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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