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상륙작전서 산화한 전몰 학도병들의 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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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상륙작전서 산화한 전몰 학도병들의 충혼
  • 영천뉴스24
  • 승인 2007.09.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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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보훈지청 김석암 보훈과장
9월 14일은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서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서 전개된 장사상륙작전 기념일이다.

6‧25전쟁의 개전초에 국군은 북한군의 탱크를 앞세운 우세한 군사력에 밀려 3일만에 수도 서울을 공산군에게 내주고 일방적으로 후퇴를 거듭하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일원에서 전선이 교착되었으나 그해 9월 유엔군의 전격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일거에 전투를 반전시켜 북진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을 기만하는 양동작전으로 장사상륙작전을 계획하고 부산항에서 17-19세의 학도병 770여명 등 800여명의 병력을 상륙함인 문산호에 탑승시켜 1950년 9월 14일 새벽에 동해안의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기습 상륙하는 작전을 감행하였다.

새벽 상륙을 감행하던 학도병들에 대하여 공산군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130여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상륙함인 문산호는 좌초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아군은 막대한 피해를 무릅쓴 상륙작전 결과 해안교두보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도주하는 적을 추격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진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서해안인 인천지역과 달리 동해안에서 장사상륙작전을 양동작전으로 전개함으로써 적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컸던 것이다.

특히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하였던 학도병들은 대부분 고등학생들로 구성되어 군사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구국일념으로 전투에 참가한 탓에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 참전학도병으로서 생존하신 분들의 수기를 보면 군복도 없이 학생복을 그대로 입고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참전하였으나 호국 충정만은 충만하여 장렬히 산화하는 그 순간까지도 북진통일을 외치며 진군하였다고 한다.

현재 장사리 해변에는 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가 산화한 전몰 용사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건립되어 매년 9월 14일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여러해 전에는 군 당국에서 장사리 해변 바다속에 묻혀진 전몰용사들의 유해로 추정되는 유골들을 발굴하여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도 하였으며 현재 아직 완전히 인양되지 못한 문산호의 잔해를 인양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장사상륙작전에서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전몰 학도병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매년 치러지고 있고 관련 현충행사들도 계획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러한 행사들이 계속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사상륙작전 기념일을 맞이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전분투하신 호국용사들의 구국충정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그 분들의 충혼이 후세에 널리 기려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하겠으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나라의 발전과 나아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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