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70 - 에도시대 일본 서점의 숫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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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70 - 에도시대 일본 서점의 숫자는?
  • 박정석(시인, 수필가, 도쿄 거주)
  • 승인 2021.05.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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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가, 국민의 지식 역량이 오늘의 한일관계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지식보다 폭력에 의한 힘이 종종 균형을 무너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긴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지식의 힘이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우리는 조선통신사를 이야기 할 때면 언제나 우리를 위로해주던 말이 있다. '조선이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해주었다'였다. 책읽는 선비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아마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선진문물' 은 일찍부터 조선에만 의지를 한것이 아니라 일본도 당나라와 많은 교류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개인의 인생도 바꾸어 주지만 국가의 흥망성쇠도 바꾸어 주었다. 나폴레옹이나 모택동 등등 이긴자들은 전쟁 중에도 손자병법 책을 가지고 다녔다. 지적 기반은 개인과 조직을 언제나 그 무엇을 구분 해내는 <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월을 통해서 헛 것과 참 것을 걸러내어 주었다.

< 水長船高수장선고 > - 물이 많으면 배는 저절로 높게 뜬다.

언제부터 일본과 한국(조선)의 경제력이 역전되었나? 역사 학자들마다 견해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00년전 임진왜란 때 일본은 조선보다 앞서 있었다는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663년 백강전투 때, 일본이 백제를 구하기 위해 4만명의 병사를 보낸 기록을 국력으로 환산해 이때부터 한반도를 앞섰다고 주장도 한다. 지금의 인구 비례로 따지면 약 100만명을 보내는 것은 국력의 뒷받침 없이는 상상을 할 수 없기에~

일본은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는 민족이었나? 18세기 에도(東京)에는 벌써 600개의 책 대여점이 있었고 6,000여개의 음식점이 있었다. 당시 오사카가 거대한 상업도시로 발돋음을 했다면 에도는 거대한 소비도시였다. 조선의 한양이 20만의 인구를 가진데 비해서 에도는 100만 인구의 세계 톱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통치기반인 참근교대参勤交代라는 제도가 낳은 결과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인류의 문명은 도시에서 만들어져 왔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국가, 국민의 지식 역량이 오늘의 한일관계다.

역사 속 조선과는 현격히 차별되는 일본의 지식 역량!

18세기 에도에 책 대여점 600곳이라 함은 일본은 엄청난 지적 기반을 가진 에도라는 도시를 가졌고, 지적 국가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한양에는 단 한 곳도 서점이 없었고 조선의 지식은 양반만의 것이었다. 지식의 공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화가 억울한가? 그러면 책을 읽어야 한다. 아직 지식의 식민지화는 다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문학은 많은 것이 서양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조선으로 대한민국으로 들여온 것이었다.

◇ 국가, 국민의 지식 역량이  오늘의 한일관계다.

☆ 인류가 찾아낸 효율적 방법 중에 [책읽기]는 제일 적은 투자로 제일 많은 투자 회수가 되어지는 방법이다. 이는 부를 가져오고~ 지적 자존감까지 가져오는 효과가 확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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