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919년 독립운동 자료 40년 만에 대구 보현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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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919년 독립운동 자료 40년 만에 대구 보현사 나들이
  • 이원석 기자
  • 승인 2021.04.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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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덕산정시장 독립만세운동 기념·전시회 열려

• 조선선종경북포교당(동화사 직할 포교당 보현사) 관련 기록과 독립운동자료 전시

• 조선선종경북포교당 직인과 대구부 덕산정 주소가 찍힌 '선문염송' 전시

• 1919년 3월 1일 발행된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 등사본

• 사원(法名 : 四願, 속명 김문옥 金文玉) 스님의 소장자료

• 전시회 주관 영천역사박물관과 대구 보현사 업무협약(MOU) 체결

그동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1919년 3월 30일 덕산정(현 대구 염매시장)시장 만세운동을 준비한 조선선종경북포교당(朝鮮禪宗慶北布敎堂)이 40년 만에 원형 그대로 경북 영천시 안야사1길 35에 보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911년 일제강점기 조선선종경북포교당으로 대구부 덕산정 62의 2에 중건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1982년 5월경 대구시 중구 문우관길 65(남산동)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 직할포교당 보현사에서 현재 위치인 경북 영천시 안야사1길 35(현 영천 용화사)에로 옮겨져 원형을 잃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1911년 일제강점기 조선선종경북포교당으로 대구부 덕산정 62의 2에 중건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1982년 5월경 대구시 중구 문우관길 65(남산동)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 직할포교당 보현사에서 현재 위치인 경북 영천시 안야사1길 35(현 영천 용화사)에로 옮겨져 원형을 잃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대구 덕산정 3월 30일 만세운동은 동화사에서 공부하던 19세에서 25세 사이의 스님(학인-學人)들 10명이 주도한 시위였다. 시위 전날인 3월 29일 깃대 및 종이로 만든 구한국 손에 드는 작은 깃발을 휴대하고 동화사를 출발하여, 대구부(大邱府) 덕산정(德山町) 동화사 출장소(조선선종경북포교당)에 도착했다.

일제는 1919년 3월 30일 만세운동에 대하여 ‘그날밤 이 법당에서 천으로 만든 구한국 깃발 1개를 만들어, 다음날 30일 오후 2시경 이것을 위의 깃대에 메어 혼잡한 덕산정 시장으로 가서 천으로 만든 깃발을 앞세워 군중 속을 천천히 걸으며 종이 깃발을 흔들면서 구한국 독립 만세를 연속해서 부름으로써 정치에 관하여 불온한 언동을 한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법당이 영천으로 옮겨진 뒤, 1998년 법당 수리 과정 중 탁자 안에서 1919년 3월 1일로 추정되는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의 창간호 내용이 담긴 등사 자료가 발견되었다.

1998년 탁자 수리 중에 발견된 불교관련 고서인 '선문염송'(사진 우측)에서 나온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 창간호 등사판(사진 좌측)  세로 22.0㎝, 가로 31.4㎝로 A4 용지보다 약간 큰편이다.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 2장이 한번에 등사되어 발견된 것은 처음으로 보고되고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활판으로 창간되었으나 이번에 공개된 조선독립신문은 등사판으로 보이며, 국민회보는 등사판으로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탁자 수리 중에 발견된 불교관련 고서인 '선문염송'(사진 우측)에서 나온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 창간호 등사판(사진 좌측) 세로 22.0㎝, 가로 31.4㎝로 A4 용지보다 약간 큰편이다.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 2장이 한번에 등사되어 발견된 것은 처음으로 보고되고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활판으로 창간되었으나 이번에 공개된 조선독립신문은 등사판으로 보이며, 국민회보는 등사판으로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료는 '선문염송'의 불서 안에 반으로 접혀 있었다. <조선독립신문>에는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 후 33인이 종로경찰서로 끌려갔다는 내용과 이천만 민족이 무폭력 저항을 통해 조선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국민회보>는 “이완용이 윤덕영과 한상학을 시켜 억울하게 고종황제를 독살하였음을 이천만 동포에게 고하니 모두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애국을 다하라.”는 기사를 전하며 ‘조선이 일본에 동화되었음을 증명한 역적들로 귀족대표 이완용, 사회대표 조중응, 유림대표 김윤식·송병준, 종친대표 윤택영, 교육·종교계 대표 신흥우.’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회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 60여 점과 함께 당시 덕산정시장 만세 운동에 참여한 사원(四願. 속명 김문옥 金文玉) 스님의 사진 자료와 신원증명서, 법운암 승적첩, 소장본 등이 공개되었다.

3월 30일 대구 보현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대한독립선언 순국선열 위령제와 추모식이 열렸으며 영천역사박물관이 기획한 제21회 찾아가는 역사박물관 전시회는 3월 30일부터 5월 30일까지 3개월간 전시될 계획이다.

3월 30일 대구 보현사에서 열린 기념식(위)과 제21회 찾아가는 역사박물관 전시회(아래)
3월 30일 대구 보현사에서 열린 기념식(위)과 제21회 찾아가는 역사박물관 전시회(아래)

영천역사박물관과 3.1 독립만세운동의 성지 대구 보현사는 3월 30일 덕산정시장 만세운동 102주년을 맞이하여 상호 기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덕산정시장 만세운동 102주년을 기념하여 영천역사박물관과 대구 불교 3.1운동 성지 보현사의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전시관 내에서 보현사 주지 지우스님과 영천역사박물관 관장 지봉스님이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덕산정시장 만세운동 102주년을 기념하여 영천역사박물관과 대구 불교 3.1운동 성지 보현사의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전시관 내에서 보현사 주지 지우스님과 영천역사박물관 관장 지봉스님이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영천역사박물관은 협약식을 통하여 앞으로도 경북과 대구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지역유산을 발굴하고 공개해 전시회를 펼쳐 나갈 것이라고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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