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 10 진불암 가는 길 ② 은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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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 10 진불암 가는 길 ② 은신굴
  • 이원석 기자
  • 승인 2020.10.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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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기록
부처굴·제1석굴암, 수호불 1기 찾아 진불암 봉안

자산(慈山) 권익구(權益九, 1662~1722) 선생의 문집 ‘자산일고(慈山逸稿)’의 ‘공산잡영(公山雜詠)편’에는 1698년 12월부터 1699년 2월까지 정민장(丁敏章), 이담로(李聃老), 하성징(河聖徵), 권치중(權致中) 선비와 함께 팔공산 치산계곡을 유람하며 아름답고 색다른 것을 뽑아 ‘십경(十景)’을 정하고, 감회를 읊은 시 50수가 실려 있다.

자산일고 속에 나오는 공산십영, 이는 치산의 10가지 빼어난 풍광에 대해 자신이 7언절구로 시를 읊고, 벗들이 원운의 운자에 따라 화답을 한 것을 모은 시집이다.<편집자주>

지금은 부처굴 또는 제1석굴암으로 불리고 있는 은신굴은 권익구 선생의 ‘공산잡영(公山雜詠)’ 십경(十景) 중 사경(四景)에 해당한다.

1942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산림과에서 임야 가운데 있는 고적 유물을 조사해 고적대장을 만들고 그것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기초로 영천향토사연구회들과 함께 지난 2006년 3월 19일 첫 답사를 나선 이래 4년 2개월 만인 2010년 5월 드디어 석굴의 실체를 확인한바 있다.

당시 석굴을 찾기 위해 수도사 입구에 있는 령지사 주지와 군위군 고로면 보림암에서 옮긴 전 진불암 주지 삼봉스님을 만나기도 했었는데 결국 한 산악인의 도움을 받아 굴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천군조의 불상항에 「팔공산 아래 진불암 계곡의 암석지내(巖石地內)의 일부에 수도사에서부터 약 20정(약 2.2km), 진불암에서 수정(數町 : 1정은 약109m)의 산중턱에 거대한 화강암 굴속에 자연석에 조각한 높이 3척(약 91cm), 흉폭 1척8촌(약 55cm)의 좌불상 1구, 높이 3척4촌(약 103cm), 흉폭 1척2촌(약 36cm)과 높이 2척5촌(약 76cm), 흉폭 1척2촌(약 36cm)의 수호불 각 1개가 있는데 표면에 균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완전하고 다른 두 구는 일부 파손된 곳이 있어도 거의 완전에 가까우며 근처에 분쇄되어버린 2, 3구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석굴은 입구 폭 230cm, 높이 140cm, 굴 안 가로 폭 470cm, 최고높이 190cm, 길이 490cm의 아치형으로 성인 7-8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입구 우측의 바위에 넘어진 나무뿌리로 인한 파손이 있어 보수가 필요하고, 굴 안의 바위도 손으로 당기면 떨어지나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다.

당시 석굴은 찾았지만 삼존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일본으로 건너갔을 수도 있고, 6ㆍ25사변 후 산판(벌목 또는 벌목을 하는 곳을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을 하면서 누군가가 가져갔을 경우 등으로 추측되어 삼존석불의 존재는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2015년 동승스님이 묘각사에서 진불암 주지로 오면서 수호불 1기를 찾아서 진불암 적멸보궁에 봉안중이다.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고려말기쯤 불교가 탄압을 받기 시작할 때 치산계곡 안에 있는 절의 불상을 모두 모아 이 굴과 주변에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선 ‘부처굴’이라 부르고 사찰에서는 제1석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며 주변을 정밀 조사하면 남아있는 유적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처굴을 찾아가려면 수도사에서 1.6km 지점인 현수교를 건너지 않고 신령재 방향으로 100m 정도 가다가 폐쇄된 동봉 방향 등산로로 500여m 더 가면 다다를 수 있다.

다음은 권익구 선생이 쓴 한시에 제현(諸賢)들이 차운한 글을 붙인 시이다.

은신굴(隱身堀)

선옹일거쇄암비(仙翁一去鎖巖扉)

석로태돌속적희(石路苔湥俗跡稀)

자시세인무복은(自是世人無復隱)

아금방욕불진의(我今方欲拂塵衣)

 

신선이 한번 가자 바위 빗장 잠기고

돌길의 이끼 깊으니 속인(俗人) 발길 드물다.

이로부터 세상사람 다시 숨지 않으리니

나 이제 바야흐로 속세의 먼지를 떨려 하네.

<권익구(權益九)>

부제현차장(附諸賢次章)

첩장위암석작비(疊嶂爲庵石作扉)

은신암굴속인희(隱身巖堀俗人稀)

연단기세승운학(煉丹幾勢乘雲鶴)

송계화음척발의(松桂花陰擲鉢衣)

 

첩첩한 산은 암자(庵子) 되고 돌은 빗장 되니

은신{隱身}의 바위굴엔 속인(俗人)이 드물다

연단(鍊丹)은 몇 년 만에 구름과 학을 탔던가

소나무와 계수나무 꽃그늘에 발의(鉢衣)를 던진다

<정민장(丁敏章)>

교성료옥폐암비(窖成寮屋閉巖扉)

곡수임돌세적희(谷燧林湥世跡稀)

문유호승장차굴(聞有胡僧藏此堀)

연단득도탈진의(鍊丹得道脫塵衣)

 

움(窖)으로 오두막 만들어 바위 빗장 잠그니

골은 깊고 숲은 짙어 속인의 흔적 드물구나

듣자니 호승(胡僧)이 있어 이 굴에 숨어서는

연단(鍊丹)으로 도(道)를 얻어 속세의 옷 벗었다지

<이담로(李聃老)>

백운돌처쇄암비(白雲湥處鎖巖扉)

석경태생객도희(石逕苔生客到稀)

인거천년무복은(人去千年無復隱)

오장적피불진의(吾將適彼拂塵衣)

 

흰 구름 깊은 곳에 바위 빗장 잠기어

돌로 된 샛길에 이끼 생겨 속인 이름(到) 드물구나

사람 떠난 천년에 다시 숨은 이 없으니

내 장차 저기에 가서 속세의 먼지 떨쳐보리

<하성징(河聖徵)>

 

무림황죽자성비(茂林荒竹自成扉)

석경태돌세적희(石逕苔湥世跡稀)

단견수초농숙무(但見樹梢籠宿霧)

산풍취송습인의(山風吹送濕人衣)

 

짙은 숲 거친 대 숲은 저절로 빗장을 이루고

돌로 된 샛길에 이끼 깊으니 세인의 흔적 드물구나

다만 보이느니 잡나무 숲엔 묵은 안개 머묾 뿐

산바람이 불어와 사람의 젖은 옷을 날려주네

<권치중(權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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