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6 영천의 월경지 포항시 죽장면 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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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6 영천의 월경지 포항시 죽장면 입암
  • 이원석 기자
  • 승인 2020.08.13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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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 28경, 산남의진 순국지, 일제당, 입암서원, 노계 박인로 시비

월경지(越境地)는 군현과 같은 지방 행정 단위의 소속 영역 중 다른 군현의 영역을 넘어 들어가 위치한 영역을 의미하며 월입지(越入地), 비입지(飛入地), 비월지(飛越地), 비지(飛地)라고도 한다.

일제당
일제당

757년에 장진현(長鎭縣)이 되어 임고군(臨皐郡 : 영천시)의 영현이 되었던 죽장면은 고려시대에 죽장부곡(竹長部曲)으로 강등되어 경주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 부곡제도가 폐지되고 죽장현이 되었으며 이후 주현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죽장면이 되었다. 1906년 경주군 죽장면이 죽남면과 죽북면으로 분면되어 영천의 월경지인 입암봉대(立巖烽臺)와 함께 청하군에 편입되었다.

영천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를 찾은 날은 오랜 장마가 개이고 모처럼 맑은 하늘이 열려 방문객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산남의진발상기념비(순국지)
산남의진발상기념비(순국지)

입암리에는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에서 시작된 산남의진의 흔적과 입암 28경을 노래한 노계 박인로(1561~1642) 선생의 시비, 여헌 장현광과 함께 영양사우(永陽四友) 권극립, 정사상, 손우남, 정사진의 위패가 봉안된 입암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충효단
충효단

먼저 지난 1985년 세운 산남의진발상기념비를 찾았다. 서포중·경북간호고 담장을 돌아 조금 가면 나오는 ‘산남의진발상기념비’는 지난 5월 산남의진 전투지의 부대시설(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산남의진 전투지는 구한말 산남의진 정용기(1대, 1862~1907)·정환직(2대, 1843~1907)·최세윤(3대, 1867~1916) 의병대장을 비롯한 포항·영천지역 의병들이 죽장면 입암리 일원에서 치열한 항일 의병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산남의진 전투지’로 지정된 하천변 일대는 1907년 8월 산남의진 의병과 일본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여져 정용기 의병대장과 이한구·손영각 중군장 등 수많은 의병들이 숨진 곳이다.

한편 산남의진(山南義陣)은 광무 9년(1905) 불법적인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정환직이 고종에게 ‘짐망 화천지수(朕望 華泉之水)’란 밀지를 받고 일으킨 의병진으로 구한말인 1906년부터 1910년까지 경북 영일·영천·청송·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를 말하며 입암은 초대대장 정용기의 순국지이다.

영천문화원과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에 산남의진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고 충효리 인근에 정환직·정용기 부자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입암서원
입암서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된 일제당(日躋堂)은 조선 선조 33년(1600)에 건축되어 여헌 장현광, 수암 정사진, 윤암 손우남 등이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며 1629년에는 노계 박인로가 내유해 입압가 29수와 입암별곡을 남기기도 했다. 1907년 산남의진 전투와 관련해 일본군이 방화해 소실되었던 것을 1914년 복원했다. 비 개인 날 바라본 일제당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했다.

입암서원(立巖書院)은 조선 효종 8년(1657)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 권극립(權克立, 1558~1661), 정사상(鄭四象, 1563~1623), 손우남(孫宇男, 1564~1623), 정사진(鄭四震, 1567~1616) 등을 배향하고 있다. 그 후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순종 원년(1907)에 묘우(廟宇)가 소실되었다.

서원은 1913년에 복원되고 1972년에는 묘우 역시 새로 만들어졌다. 서원 주변에는 일제당과 만활당(萬活堂)이 건립되어 있다. 만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박돌로 3단의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초석을 놓은 후 둥근 기둥을 세운 3량가 홑처마 굴도리집이다. 서원 옆에는 동봉 권극립 선생 유허비가 자리잡고 있다.

동봉권선생유허비
동봉권선생유허비

노계 박인로의 입암 28경을 일경인 입암(立巖)부터 기여암(起予巖), 계구대(戒懼臺), 구인봉(九仞峯), 토월봉(吐月峯), 소로잠(小魯岑), 산지령(産芝嶺), 함휘령(含輝嶺), 정운령(停雲嶺), 격진령(隔塵嶺), 경운야(耕雲野), 야연림(惹煙林), 초은동(招隱洞), 심진동(尋眞洞), 채약동(採藥洞), 경심대(鏡心臺)와 수어연(數魚淵), 피세대(避世臺), 상엄대(尙嚴臺), 욕학담(浴鶴潭), 화리대(畵裏臺), 합류대(合流臺), 조월탄(釣月灘), 세이담(洗耳潭), 향옥교(響玉橋), 답태교(踏苔橋), 물멱정(勿冪井), 상두석(象斗石)까지 화창한 날 차례로 음미하는 것도 좋을듯했다.

노계 박인로 시비
노계 박인로 시비

입암서원 건너편 가사천 주변에 2001년 11월 건립된 노계 박인로의 시비가 있다. 가로 3m, 세로 1.2m, 높이 2.5m의 규모로 세워졌는데 노계의 시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한때 영천의 월경지로 거리도 가깝고 인연이 많았던 입암리, 아름다운 자연과 사연들이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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