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심(心)자 닮은 동백천국 지심도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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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심(心)자 닮은 동백천국 지심도 트레킹
  • 이원석 기자
  • 승인 2020.07.29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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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군사요충지로 강제 수용된 비운의 섬
3년 전 거제시 반환, 지세포항에서 1.5㎞, 관광객 많아

동백나무가 아름다워서 ‘동백섬’이라고 불리는 거제시 일운면 지심도길에 속하는 약 10만평의 작은 섬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한다. 동백꽃을 보려면 3, 4월이 최적이지만 여름 트레킹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길을 나섰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가덕해양파크휴게소에 붙은 현수막을 보고 지난 5월 16일 첫 취항한 지세포항에 전화로 12시 45분 도선을 2,000원 할인된 왕복 12,000원에 예매했다.

지심도는 지세포항에서 동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 0.338㎢, 해안선 길이는 3.5㎞이다. 동백섬으로 불리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현재 장승포항과 지세포항에서 유람선과 도선이 운항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에 강제수용 된 후 지상권만이 주민 소유로 소유권을 되돌려달라는 거제시민들의 오랜 염원이 결실을 맺어 2017년 3월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이전이 완료됐다.

지세포항을 출발한 도선은 15분 만에 지심도선착장에 도착하니 범바위 위에 자리 잡은 인어상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심도 반환기념비에는 지심도에 대한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 지심도 반환기념비

지심도 반환기념비
지심도 반환기념비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바다를 터전으로 울창한 원시 동백림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던 섬 지심도! 일제강점기인 1936년 4월, 일본군은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중일전쟁 등 전쟁 요충지로 사용했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방부로 소유권이 전환되었다. 1995년 국방과학연구소 해상시험소가 섬 중앙에 들어서고 국방부가 지심도를 국방·군사시설로 관리 사용하면서 시민과 관광객들은 많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마끝전망대
마끝전망대

이에 거제시는 2005년 지심도 이관팀을 구성했고 48,743명이 동참한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국회청원 등 노력을 다했으나 2008년 8월 국회 임기만료로 청원서가 폐기되면서 지심도 반환사업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거제시는 시민의 오랜 염원인 지심도 반환을 기필코 완성하기 위해 2011년 6월 13일 국방부에 지심도 이관 건의를 시작하며 다시 불을 붙였고 국방부, 환경부 등 12개 기관과의 끈질긴 협상과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해상시험소를 서이말 지역으로 이전 완료하고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었다.

■ 범바위의 전설

예전에 옥림마을 뒷산에 숫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해변에서 지심도 바다밑 용궁에서 살던 공주인 인어를 보았다. 호랑이는 인어를 보는 순간 반해 사랑을 고백했다. 수달로부터 감성돔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받고 나왔다가 호랑이의 사랑고백을 받은 인어공주는 용왕님에게 허락을 받아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용궁으로 갔다.

호랑이는 인어공주의 약속만 믿고 기다렸지만 끝끝내 오지 않았고 그리움과 배고픔에 지쳐 바위에 누워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은 호랑이는 파도에 밀려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는 죽어서도 가죽을 남겨 놓고 당신을 기다렸다’는 표시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그 때 새겨진 그림이 천상 호랑이였고 천 년 만 년 변하지 않을 바위라 범바위라고 불린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트레킹은 마끝(해안절벽)전망대, 국방과학연구소, 포진지, 탄약고, 세관초소 표지석, 활주로, 동백터널, 곰솔할배, 골솔할매,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해안선전망대, 섬끝전망대,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 구 일본군 서치라이트(탐조등) 보관소, 구 일본군 전등소 및 전등소 소장 사택으로 이어진다.

■ 구 일본군 포대

장승포천주교회 지심도공소
장승포천주교회 지심도공소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략 2년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면방위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 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1936년 4월 23일 일본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같은 해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총예산 1백46만5천원을 투여해 군 막사, 초소, 경계표찰 등이 1938년 1월 27일 완공되었다. 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4명의 인원을 배치했다.

구 일본군 포대
구 일본군 포대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개 중대 약 1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포진지 4곳은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심도 포대 4곳은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다. 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 구 일본군 탄약고

구 일본군 탄약고
구 일본군 탄약고

1935년 11월 30일부터 1938년 1월 27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에는 전등을 설치했고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활주로
활주로

1936년 5월 7일 현재 39식 기관총 고사양용 38개, 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할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도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곳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 쪽 방향이며, 후문은 대마도(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모든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동백터널
동백터널

탄약고 안에는 지심도의 생활상과 자연환경, 지심도의 포대설치, 일제의 침략, 지심도의 역사 등을 잘 기록해 두었다.

■ 세관초소 표지석

세관초소 표지석
세관초소 표지석

2016년 당시의 천홍욱 관세청장이 세운 세관초소 표지석에는 1966년부터 1986년까지 남해안 일대 특공대식 밀수와 활어선 등을 이용한 해상밀수 차단 및 예방에 기여한 세관 감시초소가 있었던 곳임이 설명되어 있다.

■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곰솔할배
곰솔할배
곰솔할매
곰솔할매

이 사택은 1936년 10월 27일부터 1938년 1월 27일까지 지은 것으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준공됐다. 전등소에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현재 발전소는 피싱하우스에서 사용하는 민박 건물이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현재 전등소와 가까운 거리에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설치되었다. 탐조등은 야간에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해 설치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도달거리는 약 7~9km 정도였다.

■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와 국기게양대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
구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해 욱일기(旭日旗, 교쿠지쯔키)를 게양했던 곳이다. 욱일기는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히노마루)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햇살을 붉은 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국기로 1889년 해군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해체되면서 사라졌다가, 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섬끝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
섬끝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치

이 깃발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게양대 위치는 당시 양지암 통신대, 부산 영도포대, 대마도 등지를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 현 위치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망루를 따로 설치해 주변 경계를 서기도 했다. 현재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 서치라이트 보관소

서치라이트 보관소
서치라이트 보관소

1938년 1월 27일 구 일본군에 의해 완공됐다. 이 전등은 원거리의 물체들을 탐색하거나 비추는 용도 또는 표지 등의 용도로 쓰였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탐조등은 직경 2m정도로 도달거리는 약 7~9km까지 이르렀다. 탐조등은 장승포, 일운면 지세포, 진해만, 쓰시마쪽 방향에 설치해 지심도로 접근하는 선박이나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탐조등 보관소는 포대나 탄약고처럼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쓰시마에 있는 탐조등보관소와 같은 두꺼운 철문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주요 요새의 방향을 확인해 정확하기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시 범위는 대한해협 및 대마도 일대까지였다. 중앙부에 정사각형의 표시로 기준이 되는 자리를 표시하고 각 방향마다 표지석을 세웠다.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5개만 남아있다.

원시림과 해식절벽,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심도는 성인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항구에서 가까워서 짧은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섬 여행으로 제격일 것 같았다. 동백꽃이 장관인 봄에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은 아름다운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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