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 5 영천시 역사문화탐방로 '충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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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문화유산 다시보기〕 5 영천시 역사문화탐방로 '충효의 길'
  • 이원석 기자
  • 승인 2020.07.05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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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충혼탑~전통문화체험관~전투메모리얼파크~금호강
동선 넓혀 백신애 징검다리, 호연정, 숭렬당, 향교 등 포함해도 좋아

영천시 역사문화탐방로 충효의 길은 금호강에서 출발해 충혼탑, 영천전통문화체험관, 영천시민운동장, 영천야구장,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금호강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로 총길이 3.94km,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이 걸린다.

백신애 징검다리
백신애 징검다리

거북바위에서 출발하면 충혼탑, 영천전통문화체험관, 영천민속관,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영천지구전적비, 무공수훈국가유공자비, 영천지구전승비, 수난이대 기념비 등 역사ㆍ호국 관련 유적을 관람할 수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출발지를 거북바위에서 200m 떨어진 백신애 징검다리로 잡고 동선을 살짝 넓히면 병와 이형상 선생이 지은 한시인 ‘성고구곡(城皐九曲)’ 중 사곡(四曲) 자리인 영천성당 구사제관 성사헌(성찰하고 묵상하는 집) 밑 만세정(晩洗頂), 호연정, 영천읍성비, 숭렬당, 영천향교를 추가할 수 있다.

탐방로에 들어있는 유적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백신애

1920년대 여성운동가로, 1930년대에는 작가로서 그 시대를 격렬하게 살아왔으며,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소설로 적빈, 꺼래이(일제 강점기 러시아인이 조선인을 낮춰 부른 말), 채색교, 악부자 등이 있다. 영천에 살던 1929년 박계화란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1등으로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8년 영천시민운동장 근처에 백신애 문학비가 건립되었다가 2019년 영천시립도서관 앞으로 이전했다. 탄생지인 창구동 68번지 일대가 백신애길로 명명되었다.

▶만세정(晩洗頂)

영천성당 사제관인 '성사헌'
영천성당 사제관인 '성사헌'

범월병(泛月屛), 서운암(棲雲巖), 하수구(下水龜), 만세정(晩洗頂), 야연층(惹烟層), 적파선(寂波禪), 정부장(鼎扶莊), 사박협(沙搏峽), 청통사(淸通社)….

1957년 11월에 찍은 성사헌 축성 모습
1957년 11월에 찍은 성사헌 축성 모습

성고구곡(城皐九曲)은 병와 이형상 선생이 1702년(숙종 28) 주자가 지은 뱃노래인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연상하면서 직접 구곡을 경영하고 그 승경을 노래한 한시로 사곡 만세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四曲層層聳斗巖 사곡이라 층층이 큰 바위 솟아있는데

一株癯木翠毿毿 한 그루 깡마른 나무 푸르게 늘어져 있네.

明沙浩渺灘聲轉 밝은 모래 호묘하고 여울 물소리 굴러가니

歧處吾稱晩洗潭 갈라져가는 그 곳을 만세담이라 일컫도다

▶거북바위(下水龜)

거북바위
거북바위

호연정을 업고 있는 거북바위는 성구구곡 중 삼곡(三曲) 하수구(下水龜)에 해당한다.

삼곡서견하뢰선(三曲徐牽下瀨船) 삼곡이라 하뢰선(下瀨船)을 천천히 당겨놓고

구암위석주위년(龜巖爲席酒爲年) 구암(龜岩)을 자리 삼고 술로 해를 보내네

임천자족연하취(林泉自足烟霞趣) 산과 물의 자연히 연하(烟霞)의 취미 만족하니

하사공문만걸련(何事公門謾乞憐) 무엇 때문에 관문(官門)에서 부질없이 동정을 구하랴

▶호연정(浩然亭)

호연정
호연정

호연정은 병와 이형상이 영천에 정착한지 11년째 되던 해인 1710년경 건립되었다. 영천에 정착한 후로도 제주와 경주에 외직을 지내고 있는 사이 정자를 짓기 시작해 완전히 벼슬을 버리고 난 1710년경에 정자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상량문에 초옥삼간(草屋三間)이라는 기록이 있어 건립 당시에는 초가집 3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근대 일제 강점기에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추정하기로 중건되면서 정자 남쪽 강변에 담장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형상은 정자를 완성하고 수많은 저술 활동을 하면서 후학에 힘썼다.

정자 뒤로는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병와 이형상 수고본(手稿本)을 보관하는 유고각이 있다. 내부에는 병와 이형상이 저술한 책과 유품이 보관돼 있고 성남서원에 봉안돼 있었던 ‘오성도’도 함께 있다. 정자는 중건 이후 관리가 잘되고 있다. 한편 정자 남쪽은 담장 아래로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영천읍성지(永川邑城址)

영천읍성지 표지석
영천읍성지 표지석

영천읍성은 1591년(선조 24)에 축성되었지만 이듬해 임진왜란의 전화(戰禍)를 입어 파괴되었다. 지금은 고문헌의 기록과 고지도, 현장 확인 등을 통해 성곽의 범위를 대략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의 추정 범위는 영천시 문내동·성내동·교촌동·창구동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남천과 절벽, 배후의 산지 등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해 쌓은 자연지세형 읍성으로 방형(方形)형태의 평산성(平山城)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까지 남아있던 서쪽과 동쪽의 일부 잔존 성벽이나 객사, 동헌 등의 공해(公廨 : 예전에 관가의 건물을 이르던 말) 건물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었고 도시 개발로 인해 대부분 없어졌다.

영천읍성을 기억하기 위해 1995년 영천향토사연구회와 보이걸스카우트 골벌지역대에서 호연정 앞과 영천중앙초등학교 교정 화단에 표지석 1기씩을 세웠다.

▶숭렬당(崇烈堂)

숭렬당
숭렬당

조선 세종 15년(1433)에 건립된 중국식(中國式) 건물로서 그 구조와 형태가 아름답고 특이하다. 이 건물은 세종 원년(1419) 쓰시마 정벌과 야인토벌 등에 혁혁한 공적을 남겨 일명 복장군(福將軍)이라 불리었던 명장(名將) 위양공(威襄公) 이순몽(李順蒙) 장군이 평소 기거했던 집이다.

1970년에 보물로 지정이 돼 그 후 해체복원과 담장보수 및 부속시설 공사로 진행이 되었으며 지금은 완전히 그 원형을 회복하고 있다. 이 건물의 건축양식은 정면이 5칸이고 측면 3칸의 별당식으로 6칸 대청이 기본이다. 그리고 대청의 양측면은 똑같이 2칸통의 온돌이 딸리고 있다. 이 방의 출입구는 전면과 대청 벽 쪽에 각기 2개의 여닫이가 있고 측면으로 한 개의 외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숭렬공원
숭렬공원

양쪽 온돌칸 기단부(基壇部)를 따내어 아궁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 1칸씩의 누마루로 되었고 전면의 주열(柱列) 바깥쪽으로 3칸에는 긴 툇마루를 부설했다. 큰 부재(部材)의 익공, 부분적으로 완곡 유력한 한편 건실한 기풍을 띤 초각(草刻)행공 배바닥의 간략한 초각 등 조선초기의 수법이 보이고 있다. 현재는 장군의 위패를 받들고 봄·가을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

▶영천 충혼탑

영천 충혼탑
영천 충혼탑

6.25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영천지역 출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영천시민들의 뜻을 모아 건립되었고 이후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6월 25일 현위치에 재건립된 국가보훈지청 현충시설이다. ‘영천전투, 한국전쟁의 반격’을 테마로 6.25, 그 시작과 끝, 영천전투의 현장 속으로… 등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시 교촌동에 국비 10억원을 포함한 28억 9천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대지 2,168㎡에 지하 1층~지상 4층, 총면적 1천 372㎡ 규모로 신축되었다. 특히 전국 50여 개의 창작스튜디오 중 공립 성격의 신축시설로는 2007년 개관한 청주에 이어 영천이 2번째로, 전국에서 2개뿐인 공립 창작스튜디오이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건립했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개관 이후 연중 각종 다양한 문화예술 전시 및 강좌를 비롯해 미술대전, 서예대전 등 우수한 전시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으며 9개의 창작 작업실과 2개의 전시실, 세미나실,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영천전통문화체험관

영천전통문화체험관
영천전통문화체험관

영천의 전통문화 계승과 체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국비와 도·시비 등 총 20여 억원으로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형태의 2층 건물로 건립되었다. 2019년 5월 전시실 조성사업이 완료된 전통문화체험관은 1층과 계단부에는 별의도시 영천의 과거 천문·지리 지도와 영천의 변화과정을 읽을 수 있는 역사연표 공간을, 2층 내부에는 다양한 의복체험을 할 수 있는 포목점, 영천의 대표 특산물과 전통음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음식주막, 봉수대, 곳나무 싸움 재현 모습 및 영천의 구전 음악·문학 공간 등을 조성해 다채로운 전통문화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천민속관

영천민속관
영천민속관

영천 지역의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증진시키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홍보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2년 영천시 교촌동에 설립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주변에 있는 충혼탑과 영천지구전승비, 최무선장군추모비와 영천시생활체육관,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등도 영천의 문화 유적지로 각광받고 있다. 용도별로 분류·진열되어 있는 민속자료들은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건전한 정서를 함양하고 살아 있는 역사 지식을 얻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상 생활용품 212점, 화폐류 140점, 농기계류 62점, 혼례 용품 16점, 귀금속류 32점, 토기류 40점, 고서점류 10점, 기타 316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영천시 화룡동 989번지 일원 8만여㎡에 진입도로 개설, 인프라 구축 등의 기반조성 비용을 포함해 총 435억원을 투입한 영천시의 숙원사업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주요 신산업인 로봇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제조업 중심의 지역산업을 차세대 신성장 산업으로 전환해, 일자리 창출, 고용 확대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1년 3월 개교하는 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는 대한민국 최고의 로봇융합 생산기술 인력양성을 목표로 Learning Factory(개방형융합실습실) 운영, 로봇 요소기술별 모듈식 교과 운영 등 기존 대학의 교육운영방식과 차별성을 두어 실제 산업 현장의 생산 공정과 직무에 맞춘 교육과정을 제공하며, 2020년 9월 중 신입생(10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영천지구전적비

영천지구전적비
영천지구전적비

“조국의 운명을 건 갈림길에 적구의 무리들이 영천 뻘을 넘나드니 인과 철이 용융하는 너, 나 뛰쳐나가 둑을 막아 내 고장을 지켰다. 저~ 기룡산은 이~ 금호강은 너의 용자를 길이 간직하리”

6.25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4일 파죽지세로 남침한 북괴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기도아래 전력의 요충인 이곳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만약 영천이 떨어지면 유엔군은 울산-밀양을 잇는 이른바 데이비드손 방어선으로 철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은 국가의 운명이 이 싸움의 승패에 달려있음을 알고 분연히 일어섰다. 그러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해 어찌할 바 없이 영천을 내어놓기를 수차례…. 분노한 우리 군민들은 너도나도 총을 잡고 전장에 나섰다. 이윽고 전열이 정비되자 유재흥 군단장은 이달 9일 총 반격전을 감행해 금호강변에서 적을 포위 섬멸하고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의 위기를 구하고 북진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전적비는 6.25전쟁 당시 금호강전투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수하고자 용감하게 싸웠던 장병과 주민 합동의 빛나는 공훈과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1980년 10월 7일 건설교통부에서 건립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무공수훈국가유공자비

무공수훈국가유공자비
무공수훈국가유공자비

영천출신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동족상잔의 6.25한국전쟁, 이역만리 월남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공로로 영광스런 무공훈장을 수훈한 국가유공자와 평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남다른 공적을 세우고 보국훈장을 수훈한 국가유공자들의 빛나는 공훈과 호국정신을 기림으로써 그분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후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정신을 고취하고자 2004년 12월 10일 건립되고 2015년 5월 14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지정, 등록되었다.(무공훈장 :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보국훈장 : 통일, 국선, 천수, 삼일, 광복)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체험권)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6.25전쟁 당시 역전의 신호탄이 된 영천전투를 기념하고 후대에 나라사랑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체험권 조성사업은 영천전투전망타워 내 전쟁체험, 야외서바이벌 체험을 통해 재미있는 안보교육, Edutainment를 추구하고 있으며, 영천의 시조이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날개를 모티브로 새로이 건립된 충혼탑 일원 정비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지하 1층~지상 3층, 면적 1,381㎡, 연면적은 2,295㎡이다. 전시공간으로 ‘호국의 메카, 영천!’ 호국역사 전시물(지하 1층 로비)과 ‘1950 영천 대혈투 속으로’ 전쟁체험물(지상 1층 전시실)이 있고 안보교육체험관(이성가 장군실), 전망대, 다목적실, 키즈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천지구전승비

영천지구전승비
영천지구전승비

6.25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15일을 기해 대구를 탈취하려던 북괴군은 제1차 총공격의 기도가 실패하자 9월 초순에 적 제2군단이 또다시 내습해 동년 9월 6일에 영천이 적에게 탈취 당하게 되었으나 이에 아군 제2군단의 필사적인 반격으로 적을 퇴주시키고, 이와 같이 하기를 수차 반복한 후 적을 완전히 퇴각시켰다. 특히 제8사단 제21연대는 영천이 피탈되자 후방이 차단되어 일시 위기에 빠졌으나 용감하게 적을 제지시켜 아군에게 총반격의 기회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전승비는 조국을 위해 바친 불굴의 투지와 불멸의 공훈을 기념하고 승전한 용사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58년 10월 20일 영천시 창구동 1번지(영천문화원 뒤편)에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이 건립했으며, 이후 본 전승비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하는 영천대첩 참전전우회 등 단체의 의견을 모아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6월 25일 현재 장소로 이전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하근찬(수난이대)

1931년 10월 21일 영천에서 출생한 하근찬 소설가는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흰 종이 수엽, 나룻배 이야기, 흉소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한국문학상, 요산문학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영천향교

영천향교
영천향교

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시고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종 17년(1435)에 대성전을 세우고 중종 8년(1513)에 군수 김흠조가 고쳐지었다. 임진왜란 때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 이현남이 대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오성위(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의 위패를 자양면 기룡산(騎龍山)의 성혈암(聖穴岩)으로 옮겼다가 이후 다시 제자리에 모셨다. 광해군 14년(1622)에 군수 황효의가 다시 지었으며 명륜당은 명종 1년(1546)에 군수 이중량이 만들었는데 선조 3년(1570) 불에 타서 사라졌다.

임진왜란 뒤 1619년 군수 조명운이 다시 짓다가 정조 6년(1782) 화재로 일부 건물이 불에 타서 2년 뒤인 1784년 군수 심진이 다시 보수했다. 그 뒤 현종부터 숙종 때까지 군수 한명원이 전사청(典祀聽)을 지었고 고종 때 군수 남필우가 보수했다. 1970년에는 서재(西齋), 1972년에는 동재(東齋), 그리고 1973년에 전사청을 보수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5칸, 명륜당 10칸을 비롯해 동재, 서재, 삼일재(三一齋), 전사청,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산이나 강변, 해안, 섬 등 둘레길 탐방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증가했다. 영천시 역사문화탐방로 충효의 길을 걸으면서 무더운 햇볕에 노출되고 흙길을 걸을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영천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마현산 메모리얼 무장애 나눔숲길과 산책로, 전투메모리얼파크 뒤쪽에 남아 있는 200m의 짧은 숲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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