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64 - 신사(神社)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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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64 - 신사(神社) 이야기 (1)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20.05.3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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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웃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문화를 더 공부해서 밝히려 하는가? 그것은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통하여 상처를 치유&화해를 하여 발전적 미래를 함께 꿈꾸고자 함이다"

일본의 민족 신앙의 종교는 신도(神道)이다. 이 신도의 신사(神社)를 아는 것은 일본 종교 역사를 아는 것이다.

신도는 현대의 많은 고등 종교와는 다르게 원시공동체 사회의 중심이었던 제사의 장에서 발생한 종교이다. 원시 사회의 모든 종교의 기원이 조상신을 섬기는 데부터 기원이 있듯이.

일본에 외부 종교가 들어오는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가장 큰 두 종교의 일본에 들어오면서 수난사를 짧게나마 보자.

첫 번째는 불교였다. 모든 국가와 만찬가지로 원시적 조상신을 섬기던 고대 시대에 한반도로부터 고등종교인 불교가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천황가와 지도층들이 크게 싸우며 피로 얼룩졌다. 물론 한반도 도래인들의 노력이었다.

일본의 민족 신앙인 신도와 불교는 <신불습합>이라는 종교통합의 결혼이 이루어졌었다. 그 후 오랜 세월 신혼은 평화로웠다. 이러한 통합이라는 결혼도 근대화의 상징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는 정부 주도로 볼 수 있는 탄압으로 결국 <신불습합>이 깨어졌다. 전국에 산재해있던 불교 속 신사, 신사 속 불교는 불상의 목이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으며 이혼을 하게 된다.

두 번째는 가톨릭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걸쳐서 포르투갈로부터 들어온 종교가 고등종교인 가톨릭이었다. 쇄국정치 속에서도 서양과의 교류의 작은 통로였던 나가사키겐 데지마! 서양의 선교사가 규슈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가톨릭은 퍼져나갔다. 이에 긴장한 일본의 쇼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칼잡이들을 내세워 피를 흘리는 종교탄압을 해왔던 것이다.

여기에 그 유명한 전설적인 칼잡이,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도 투입되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인들이 칼을 무서워하지 않고 죽어가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어 그 후 사무라이의 도(道)를 정립하는 길을 걸었다. 이때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이 현재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확산되어진 기독교 문화!

일본은 그 뿌리가 될 싹을 너무나 깊이 잘라버린 것이다. 지금 일본의 기독교인의 숫자는 2%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온 신도는 원시적 모습이 오랜 세월 속에서 기독교 등 타 종교의 교리도 접목하며 더 다듬어진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신도의 신사(神社)는 무엇인가? 신도를 나타내는 외형적 모습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영역의 건물을 말한다. 신도의 신(神)들은 팔백만이라 한다. 일반 기독교 등에서 유일신을 믿는 것에 비하면 상상이 안된다. 그러나 그 숫자는 어원이 많다는 의미이지 결코 800만이라는 것이 아니다.

신도에서 믿는 산, 폭포, 나무나 돌 등이 있는 반면에 대자연이나 불교, 도교 등의 인물들도 있다. 이는 원시적 종교에서 신도와 불교의 통합인 <신불습합>으로 불교의 신들도, 도교의 신들도 제한 없이 마음껏 추가 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유명한 여러 위인도 있다. 특이한 신사 중에는 유명 장군이 입은 갑옷만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

이 사진은 모든 신사의 입구에 있는 도리이(鳥居)라는 구조물이다. 이제부터 일본의 민족 종교인 신도와 그 형상을 나타내는 신사를 배우러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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