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59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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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59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3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20.02.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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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막부의 시대 상황과 쇼인

2회에서 살펴본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시대의 중심인물들을 배출해낸 일본 제일의 사설학교였다.

여기서 우리는 왜? 도쿠가와 에도막부 시대 260년간 평화의 시대가 위기로 인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 역사적 환경을 알아야겠다.

260년 간이라는 평화의 시대! 이때 조선과 선린우호의 상징 <조선통신사>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시대이다. 고려는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474년간!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519년간 집권했다. 에도시대는 고려와 조선에 비할 바 아니나 그렇게 오랜 세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가제법도는 몇 번에 걸쳐서 개정되었다.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으나 많은 역사가가 제일 중요하게 주목한 것이 참근교대와 천하보청이었다.

◆ 참근교대(산킨코타이, 参勤交代)

산킨코타이(参勤交代)는 다이묘를 볼모를 잡아두기 위한 에도 막부의 제도이다. 무엇 때문일까? 에도막부에 대한 충을 요구하고, 봉건사회에서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 각 번은 영주인 다이묘를 반드시 정기적으로 에도를 와서 약 1년을 머물다 가게 했다.

이렇게 다이묘가 에도를 떠날 때는 또 다른 제약이 따랐다. 그것은 자신의 정실부인과 뒤를 이을 아들을 반드시 에도에 늘 상주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저한 볼모를 요구한 제도이다. 또 다른 다이묘들과의 자녀 결혼도 허락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각 다이묘들의 군사력은 급격히 약화되어 갔다.

그들은 먼 길을 많은 식솔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가져야 했다. 이러한 고도의 규율은 도쿠가와 가의 15대에 걸친 긴 번영을 누리는 큰 요인이 된 것이다.

◆ 천하보청(天下普請, 텐카부신)

텐카부신(天下普請)이란 에도막부에게 충성을 맹세한 다이묘가 노동력을 바치도록 강제한 가장 먼저 취한 법이다. 물론 언제든지 필요 시 군사력도 제공했어야 했다. 이는 오늘날 일본을, 도쿄를 만든 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의 노동력은 축성, 제방건설, 도로 건설 등 공공 부문에서의 노역을 각 제후가 분담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기존의 중앙에 현물을 납부했던 전근대적 착취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이었다. 이는 하층부의 노동력이 상층부의 부의 축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부패가 아닌 사회 전반의 인프라 확충으로 확산되는 선순환을 가져왔었다.

◆ 급격한 인구증가

이러한 참근교대와 천하보청으로 당시 에도의 인구는 부수효과로 급격히 늘어난다. 약 260개 번의 영주인 다이묘가 식솔을 데려와서 살았으니 인구 숫자는 세계 최대 도시로 급부상한다.

1695년에는 85만명으로 일본 제일의 도시로 성장한다. 그 후에도 인구는 천하보청으로 잘 만들어진 인프라로 계속 늘어 18세기에 100만 명이 되었다. 1837년에는 128만명으로 유럽 최대의 도시 런던의 85만 명을 크게 뛰어넘는 세계 최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평화의 씨앗이 숨어져 있고, 평화 속 전쟁의 씨앗이 싹이 트는데~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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