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22〉일본인에게 존경받는 10대 인물 시리즈
상태바
〈박정석의 도쿄통신 22〉일본인에게 존경받는 10대 인물 시리즈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18.05.08 14: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①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 6. 21)

일본인에게 존경받는 10대 인물 시리즈는 누가 어느 시각에서 선정하느냐에 따라서 다소 달라진다 하겠다. 많은 名고전 또한 역자의 주석에 따라 그 명성이 달라지듯~

그러나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정되고 있는 인물 정보를 많이 보강하며 좀 더 깊이 공부해보는 시간으로 하겠다.

①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 6. 21)
센고쿠 시대 - 아즈치ㆍ모모야마 시대

★일본 역사의 大변혁기는 전국시대이다.
이 역사의 중심적 출발은 오다 노부나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ㆍ명언

여기 두견새 한 마리가 있다. 그런데 이 새가 울지를 않는다.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전국시대의 중심인물(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세 사람은 각자 답을 달리했다. 
ㆍ노부나가의 명언은 ㅡ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다. 당장에 목을 쳐 버리고 우는 새를 다시 마련하겠다“
과연 전국시대의 무사다운 선두 주자다운 다혈질의 쇼군!

ㆍ출생지는 아이찌겐愛知県(나고야가 있는~)

아버지 노부히데는 오와리 쇼바타 성을 근거지로 삼았다. 어릴 때부터 모범적이면서도 대범한 행동으로 주목을 받은 오다 노부나가! 명석한 두뇌와 행동력으로 집안내에서 경쟁 상대인 동생을 죽이는등 그 후원 세력을 척결하며 젊은시절부터 무인의 기질을 전면에 내보였다.

1549년 아버지 노부히데[信秀]의 뒤를 이어 오와리국[尾張國 : 愛知縣]의 태수가 되고, 이웃의 여러 제후를 평정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1562년에는 꿈을 실행에 옮기며 8살 아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독립의 길을 터주며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영토를 확대해 나갔다.

노부나가의 뛰어난 활약은 천황 가문에도 명성이 전해져 1567년 11월 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를 ‘고금무쌍의 명장’이라고 칭찬하면서 천황 가문의 영지를 회복해 줄 것과 사네히토 친왕의 성인식 비용을 헌상할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1568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막부(幕府)의 회복을 청해 왔으므로 이를 기회로 삼아 교토[京都]를 진정하고 막부를 재건해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운도 크게 작용했다. 최대의 라이벌로서 자기의 후원 세력인 도쿠가와 이야야스를 크게 무찌른 다케다 신겐이 전장에서 돌연 병사를 함으로서 노부나가의 꿈은 더 빨리 다가온다.

영지를 많이 확보한 노부나가는 1573년에는 자기를 적대시한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죽이지 않고 교토에서 추방했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던 연호 겐키를 덴쇼로 바꾸며 노부나가의 시대가 열렸음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그는 전국 통일을 꿈꾸며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였다. 그러나 혼노사[本能寺ㅡ현재 주소ㅡ京都府京都市中京区]에서 한때 총애했던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배신으로 취침하던중 공격을 받았다. 주위가 완전히 배신자들로 포위된 것을 알고 스스로 절에 불을 질러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즐겨 부르던 “인생 오십년, 하천(下天ㆍ천계의 시간)의 하루에 비교하면 꿈과 같구나.”라는 아쓰모리처럼 인생 50년(향년 49세)이었다.
ㆍ원문 - 【人間五十年、下天の内をくらぶれば、夢幻の如くなり】
読み方:じんかんごじゅうねんげてんのうちをくらぶればゆめまぼろしのごとくなり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국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서광을 비추어 준 전제무장(專制武將)으로 주목할 만한 여러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구체제ㆍ구관습의 타파, 새 인물의 등용, 금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ㆍ교량의 정비, 관소(關所 : 검문소)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으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한 천하통일의 위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계승되었다

ㆍ묘지 - 상기에 기술한 바와 같이 사망한 장소는 본능사(本能寺, 혼노지)이나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은 제대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후계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京都府京都市中京区小川通蛸薬師上る元本能寺町에 묘지를 이전한 것으로 전해져 온다. 또 아직도 인기있는 역사의 인물이다 보니 이 외에도 전국에 몇몇군데 묘와 공양비가 복수로 존재하고 있다.

☆기타 관련 정보
ㆍ織田信成(오다 노부나리): 오다 노부나가의 17대 손자로서 2000年부터 2010年에 걸쳐 활약한 일본의 피겨스케이트 선수로서 한국에서도 제법 알려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