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통신 5> 역사 속의 천황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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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통신 5> 역사 속의 천황家
  • 박정석(도쿄 거주)
  • 승인 2017.11.2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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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변천한 여인천하, 황실 여성의 인생!

일본 황실의 전통! 그 여성의 삶을 알아보자. 최근에 황가의 딸 약혼으로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생소한 황실의 정보에 잠시 관심을 가져보자.

먼저 두가지 단어를 공부하고 들어가야 한다. 【内親王나이신노우】 ㅡない‐しんのう 〈王는 왕〉으로 읽지 않는다. 의미 ㅡ 황실범전에 적출(정실부인)의 황실 딸, 또는 아들이 낳은 딸(손녀), 아들은【親王 신노우】라 부른다.

지난 9월 상순 秋篠宮家(아끼시노노미야가)장녀 眞子씨의 약혼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호기심은 황족과의 결혼이 아니기에 황적(황실의 호적)에서 이탈되어진다는 점이다. 일반인의 생각으로 황족으로 태어났으니 황족이어야 하지 않는가 ?

일본은 아직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리타분한 수백년 전의, 천년 전의 의례 등을 개정 없이 이어져오는 것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 무식하다는 핀찬을 주기보다 호기심이 먼저 간다. 그 대표적인 의례 중의 하나가 스모 경기장소 위에 여자가 올라가면 안된다는 규정도 그러하다.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역사 속의 황녀들』이라는 책을 쓴 저자에 의하면 천황가는 원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였단다. 그러니까 황실 밖에도 측실이 있어서 거기서도 자녀들이 당연히 출생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천황이 大正天皇이었다. 좀 더 살펴보자. 50대 천황은 자녀가 19명, 52대는 27명, 55대 천황은 20명 등이다.

여기에 우리에게는 재미있는 사실이 존재한다. 율령에 의하면 천황의 자녀로 출생하면 당연히 품위가 정해져서 봉급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옛날에는 상기의 일부다처제로 인한 많은 지출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법이 아직도 예산과 맞물려서 남아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무급의 内親王나이신노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신분을 낮추어 신하가 되는 방법으로 해결하기도 했던 것이다.

참으로 황족으로서 참기 힘든 환경이다. 그것은 역사속에 힘 없는 천황의 지위가 너무나 길었던 것도 이유였으리라. 쇼군들은 천황께 자기들의 정통성만 부여받는 허수아비로 이용한 역사로서 작은 다이묘 정도의 제정만 배정했음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율령은 황녀들의 결혼을 힘들게 하였다. 황녀는 천황가의 사촌 이내의 황족에서 찾아야했다. 그래서 황녀들은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나 숙부와 결혼하는 사례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桓武天皇간무천황】은 4명의 딸 중 3명은 배다른 아들과 결혼을 시켰다.

한편 일본 역사 속에 황실과 연결된 여성이 권력을 휘두른 시기가 있었다. 그 시대는 일본이 우리들 선조인 백제와 형제의 나라였고 백제의 도움이 들어간 율령이 정해진 나라奈良시대다. 43대, 46대 천황 등 여성 천황이 이어지면서 여제의 시대라고 불리워진다. 그야말로 〈여인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후는 여제는 나오지 않았으나 그 권력은 천황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이어갔던 것이다.

그 와중에 여제 쇼도쿠称徳천황 남자 애인인 道鏡도쿄가 권력욕에 천황직 찬탈에 눈독을 들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道鏡事件의 영향으로 인해서 그후 여제의 옹립은 되도록 피하고 어리더라도 남성 천황을 세워서 어머니가 뒤를 보는 큰 물줄기가 만들어 졌다. 그러한 여제의 그림자는 에도 초기까지 드리워졌었다.

한편 이렇게 황족과 결혼하지 않기에 황적(황실의 호적)에서 이탈되어진다는 내용이 더 민주화되고 자유화의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옛날과 같은 박탈감은 적으리리는 추측도 해본다.

그리고 상기의 내용들로 인해서 현대의 【内親王나이신노우】는 황위에는 완전히 배제가 되어있다. 여인천하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역할을 배당해 주어서 공무에 전념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일본의 역사 속에 천황의 역사에 여자 천황도 있었다는 사실과 그의 문제점으로 이젠 그 길이 막혔다는 점, 여자 황족들의 시대적으로 변해가는 작은 흐름을 함께 보았다. 지금 황실은 장자인 황태자에게 아들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몇십년후는 전통을 따를 것인지 세계화의 황실(왕실)의 여왕을 인정하는 흐름을 받아들일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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