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읍성 주요 문화재와 흔적 답사, 영천성 복성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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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읍성 주요 문화재와 흔적 답사, 영천성 복성 염원
  • 최은하 기자
  • 승인 2017.05.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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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향토사연구회와 영천읍성 특별 답사팀 합동 답사 전개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원조)에서는 지난 5.13(토) 2017년 중점활동 주제인 ‘영천읍성’의 주요 문화재와 흔적을 찾아가는 첫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영천읍성 내의 주요 문화재인 영천 조양각에서 시작한 이번 답사는 금호강 둔치에서 문외동으로 통하는 지하도를 건너 문외지구 LH아파트 부지 현장을 지나 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영천읍성비를 거쳐 향교, 충렬당, 창대서원, 호연정을 경유하는 답사였다.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주관한 이번 답사는, 지난 수 년간 조양각, 영천향교 등 영천읍성과 관련한 문화활동을 꾸준히 추진해 왔던 문화재지킴이봉사단(단장 김종식), 조선통신사기념사업회(회장 김대환),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박재홍), 영천시마을평생교육지도자협의회(회장 민복매)와 함께 ‘영천읍성 특별답사팀’ 형태로 진행되었다.

조양각에서 답사를 시작하는 영천읍성 답사팀

해동지도와 영천군전도 등 고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추정되는 영천읍성의 범위는 문내동, 성내동, 교촌동, 창구동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남천(금호강)과 강 안의 단구(절벽으로 끊긴 계단형 지형), 뒤쪽 산지 등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축성한 방형(사각형)의 성이다. 성의 둘레는 1,902척(900m 가량)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임진왜란 이후 잔존한 성벽의 길이로 실제로는 약 1.7km 내외로 추정된다. 성벽의 높이나 치성(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의 유무는 알 수 없다.

지적도상의 영천읍성과 주변시설 추정도

영천읍성은 동서남북 4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읍성 내부에는 객사, 관아, 향교, 읍창과 군기창 등이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천읍성 4대문 중 동문은 문외동 중앙공원 인근의 상가, 서문은 제일교회 맞은편, 남문은 조밭골 인근, 북문은 영천향교 뒤편의 산야지대이며 객사지는 시민약국 인근, 동헌은 현 보건소 자리, 읍창과 군기창은 객사주변에 일반적으로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나타난 영천읍성의 규모와 주요시설

답사팀의 첫 출발지점이었던 조양각은 영천읍성의 기준이 되는 건축물로 최근 조양각(명원루)의 별실이었던 청량당 사진이 일제강점기 기록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으며 청량당의 위치는 현재 영천문화원의 자리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 발행, 유리원판목록집에 실린 청량당 사진

답사팀은 조양각에서 문외동우체국 아래 지하도를 지나 수령이 450년된 회화나무를 둘러보았다. 영천읍성이 축조되기 이전부터 지금의 자리에 뿌리를 활착하고 현재까지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는 이 회화나무는 생명의 계절 오월을 맞아 무성한 잎들을 피우며 일대 주민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문외동 산호칼국수 앞 450년 된 보호수

회화나무에서 LH신축공사현장까지 가는 길목은 계곡의 형태로 자연지형을 이용한 읍성의 외곽 지대로 보여지며 답사팀은 일대 벽에 쌓인 돌들과 가정집 마당, 공사현장에서 드러난 지형의 단면을 관찰하며 읍성의 단서를 찾아나갔다.

영천초등학교 교정 동편에 위치한 영천읍성비는 1995년, 영천향토사연구회와 스카우트골벌지역대가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임진왜란(1592년) 당시 충의의 화신인 3,600여명의 창의정용군(倡義精勇軍)에 의하여 전국 최초로 복성한 곳’으로 일찍이 영천읍성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 비는 방형의 영천읍성 동북모서리를 표시하여 세운 것인데 읍성의 남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호연정 앞에도 같은 비가 세워져 있다.

영천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영천읍성비 앞에서

영천향교는 영천읍성 내에서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고 또 유래루 왼편에 있는 삼일재는 관내 대소과 급제자들을 기리고 향촌내의 인재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해오던 곳이다. 향교에서는 답사팀 방문 시간에 마침 전통 성인식인 ‘관계례’ 행사가 열리고 있어 이를 관전하고 대성전의 위패를 둘러보았다.

숭렬당은 이순몽 장군의 사제이나 이곳에는 1614년 복재 정담이 작성한 ‘영천향사당입규현판’이 걸려있다. ‘영천향사당입규현판’은 영천의 향규(향촌의 자치규약)를 기록한 현판으로 답사팀은 영천읍성 내 향촌의 규약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세계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창대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 복성에 큰 공적을 세운 정대임 장군의 충절을 기린 서원으로 영천읍성의 외벽에 위치하는 지리적 관점과 함께 영천성 복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관점에서의 고찰이 함께 이뤄지는 중요한 답사지였다.

창대서원

호연정은 조선후기 학자 병와 이형상이 건립한 정자로 ‘병와집’ 등 다양한 유물이 전해지는 정자이다. 특히 이곳은 영천읍성의 남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영천읍성 외곽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영천읍성의 거점지이다.

이번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주관한 ‘영천읍성’ 답사는 영천과 비슷한 시기에 시민적 관심이 시작되었으나 영천과는 다르게 2005년 복원을 시작해 북문과 서문 복원을 완료하고 동문과 서쪽 성벽의 복원을 진행하여 읍성 복성을 앞서 실천하고 있는 청도읍성과 읍성터에서 다양한 퍼레이드와 퍼포먼스 통해 지역경제와 문화 활성화를 꾀하는 청주읍성큰잔치를 선진 사례로 영천읍성의 복원을 염원하며 이후 범시민적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의미있는 답사였다.

청도읍성 복원 현장(위) 청주읍성큰잔치(아래)

한편 30여명의 회원들은 읍성내 현존하는 유적지를 찾을 때 마다 잊혀졌던 영천의 역사적 정체성을 찾는 감회와 함께 영천문화 바로세우기에 시민들의 뜻을 모아 읍성내 존재했던 4대문부터 점진적으로 복원하는데 주력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영천뉴스24 최은하 기자 ycn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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