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두에 발맞추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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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구두에 발맞추는 행정
  • 이종훈 기자
  • 승인 2008.04.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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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훈 기자
인간에게 발이 없었더라면 신발이라는 것도 없었을 것이고, 신발이 없었더라면 구두 만드는 사람의 직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좋은 제화공은 항상 발이라는 그 본질을 생각해서 그에 알맞게 구두를 만든다.

그러나 나쁜 제화공은 발이 자기 직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발이 구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구두에다 사람의 발을 맞추려 든다. 이런 비유는 모든 작업에 그대로 비유된다.

국민이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있는 것이고 주민이 있기 때문에 의회 의원들이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주객이 전도되어 국민이 공무원을 위해 있고 주민이 의원들을 위해있는 것 같은 본질의 소외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직업의 본질에서 벗어날 때 관료주의 현상이 빚어진다.

영천시가 임고면에 통합정수장을 건설하면서 시 소유 임야 4만2천여㎡에 있는 소나무와 잡목 등 수천 그루를 벌채, 폐기물로 처리한다고 설계한 후 그 설계를 무시해버리고 보기 좋은 소나무를 채취, 일부는 시가 필요한 시설에 쓰고, 나머지는 개인에게 반출을 허가했다. 공무원은 폐기될 소나무라며 반출된 양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설명은 소나무를 벌채해 처리하려면 폐기물처리비가 많이 드는데 이를 파내 싣고 간 개인이 이익을 챙기던 자기 집에 심던, 시로서는 폐기물처리 비용을 줄였으나 잘한 일이 아니냐는 항변이다.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게 비치지만 그렇지 않다. 내 것 아니니까 헤프게 써도 아깝지 않고 내 것 아니니까 선심 써도 좋고, 내 것 아니니까 절약하는 게 바보스럽다는 사고방식. 이를 형광등식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는가.

공직사회가 이런 의식으로 흐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임고통합정수장 건설현장에는 수령이 30~70년, 키 10m안팎의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많아 조경업자들이 탐을 냈다.

실제로 정수장에 가보면 일부 이식해 놓은 나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천시가 이런 소나무를 벌채해 폐기처분 하겠다는 당초 발상도 문제지만, 구하기 힘들고 값비싼 조경용 소나무를 개인에게 돈 한 푼 안받고 수백그루를 그냥 줬다니 소도 웃을 일이다.

지난 1월에 청주지법 1형사부는 시유림에서 소나무 한 그루를 절취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제천시의원 ㄱ(63)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건이 있었다.

농촌지역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는 그만큼 조경수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량 조경수의 경우 수천만 원대에 거래될 만큼 가격이 높다. 시민들은 이곳 소나무들을 영천시가 공개입찰을 통해 판매하고, 그 수익을 세외수입으로 잡아 어려운 이웃이나 장학금 등 좋은 곳에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영천시행정이 구두에 발을 맞추는 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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