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과 중국 고도에서 배우는 역사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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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과 중국 고도에서 배우는 역사의 진실은?”
  • 영천문화원 사무국장 이원석
  • 승인 2012.11.10 14: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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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요회’ 개봉, 진시황ㆍ양귀비 이야기 간직한 서안

유난히 바빴던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해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중국여행에 나섰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을 알아보기에 여행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 포공사

중국인들이 3대 고도(古都)라고 부르는 서안(西安), 낙양(洛陽), 개봉(開封). 지난해 하남성 여행 때 낙양을 보았기 때문에 서안을 방문하면 3대 고도를 모두 보게 된다. 개봉은 전국시대의 위(魏)나라를 비롯해 오대의 양(梁), 북송(北宋), 금(金) 등 여러 왕조의 도읍이었던 유서 깊은 도시로 중국 6대 고도이다.

<개봉시>

판관 포청천의 고장인 개봉시, 북송시대에는 100만명을 넘는 대도시였고 강남의 여러 도시와 수로로 연결돼 있어 ‘천하의 요회(要會)’라고 불렸다.

◈ 포공사(包公祠)

먼저 포공사를 찾았다. 포증은 우리나라에서는 포청천(包靑天)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 중국의 대표적 청백리이자 정치개혁가를 기념하기 위해 회복 재건한 것이다.

포공사를 세운 것은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후세 사람들의 표현이기도 하거니와 포증의 업적에 대한 칭송이기도 하다. ‘공정하고 청렴한’ 그의 이미지에 대한 중국인들의 칭송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 개봉부(开封府)

▲ 개봉부

개봉부는 중국 각 왕조에서 관청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특히 송나라 때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송나라 개봉부 건물을 참고해 2003년 재건했다.

포청천은 청렴결백한 관리의 표상으로 죄를 지은 자신의 조카까지 사형시켰을 정도로 법에 관한한 자신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

▲ 청명상하원

북송의 저명한 화가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내용을 근거해 송대 도시의 풍광을 복원한 곳이다. 대홍수로 매몰된 개봉 궁성을 복원한 것이 용정공원이라면 일반도시 풍경을 복원한 것이 청명상하원이다.

관아, 상업구역, 민가, 농업시설, 선착장 등 송대 건물 400여 채와 40여척의 당시 선박도 복원돼 있다.

 

 

◈ 철탑공원(鐵塔公園)  

▲ 철탑공원

개봉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1049년에 만들어졌으며 중국의 유명한 100대 정원 중 한곳이다. 팔각의 13층짜리 전탑인데 탑의 외벽에 유약을 바른 갈색 타일을 붙여 멀리서 보면 마치 강철을 주조해 만든 것처럼 보여 철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탑 내부는 나선형의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 중국한원비림(中國翰園碑林)

▲ 중국한원(비림)

중국의 원로서예가이자 금석문 수집가인 리공타오(李公濤ㆍ85) 화백이 중국의 유명한 비석들을 수집 개장한 한원비림은 3,700여개의 비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고대 역대왕조를 거치면서 정착된 다양한 서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에서 서안비림 다음으로 큰 제2의 비림으로 비문예술과 고전원림건축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한체로 된 예술보물창고이다.

연대순으로 갑골문, 고예, 예서, 해서, 행초서에 이르는 빼어난 작가들의 명필 비문이 1층에 가득하고, 2층에는 현대작가들의 한원비림 개관을 즈음하여 쓴 비문이 꽉 채워져 상하층 3천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정주시로 이동해 호텔에서 묵은 후 정주와 서안을 운행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섬서성 서안으로 이동했다.


<서안시>

◈ 섬서역사박물관(陕西歷史博物館)

중국에는 박물관이 2,000여개가 있다고 하는데 섬서역사박물관은 그중에서도 규모나 소장품 등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박물관이다.

서안은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중국의 옛 도읍이며 당나라시대에는 인구가 1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섬서역사박물관은 중국 4대 박물관중의 하나로 주-진-한-수-당 차례로 전시돼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며 서안 지역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보존하고 전시할 목적으로 1991년 문을 열었다.

주요 전시물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서안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이다.

◈ 대안탑  

대안탑은 서안시내에서 4km 떨어진 자은사(慈恩寺) 내에 자리잡고 있다. 자은사는 648년 당대 황제 고종이 어려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만든 절로 현재의 모습은 청대에 재건축한 것이다. 대안탑은 중국에서 유명한 불탑 중 하나로, 652년에 당(唐)나라 현장(玄奬)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7층의 누각식전탑으로 총 높이가 64m에 기반부 둘레는 25미터이다. 외부는 벽돌로 지어졌지만, 탑 내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서 걸어 올라갈 수가 있다. 매 층의 사방에는 각기 하나의 아치형 문이 있어서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당대의 두보 등 많은 저명한 시인들이 대안탑에 올라와 본 후 많은 문구들을 남겼다. 탑 내부로 올라가는 데에는 따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또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대 중엽에는 진사에 급제하면 먼저 곡장(曲江), 행원(杏圓)에서 잔치를 한 후에 대안탑에 올라와서 탑 벽에 기념 친필을 남기는 것을 대단한 영예로 여겼다.

▲ 탑림

유명한 당대시인인 백거이(白居易) 역시 진사에 합격하고 난 후, “자은탑에 친필을 새긴 17명 중 가장 어린 사람이다.(慈恩塔下題名處, 十七人中最少年)”라는 유명한 귀절을 남겼다.

◈ 명나라 성벽관광

서안(西安)의 본래 이름은 ‘긴 세월동안 평안하라’는 의미인 장안(長安)이었다. 이후 중국 통일 왕조의 수도가 동쪽으로 옮겨간 후, 서쪽의 변방을 지키는 도시로 전락하게 되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서쪽을 평안하게 하라는 의미로 서안(西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서쪽을 지키는 거점 도시로서 서안에는 당시에 만든 거대한 성벽이 600여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10m가 넘는 높이의 성벽에, 치, 옹성, 포루, 해자 등을 갖춘 이 성벽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각 문 앞에 설치된 옹성 안에 들어선 적들은 높은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에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종고루 광장

중국 서안의 ‘종고루 광장’은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만남의 광장이자 서안 시내 중심에 위치한 ‘종루’와 ‘고루’ 사이의 광장이다.

이곳에 있는 종루는 명나라 홍무 17년(1384)에 세워졌으며 서안 시내의 동서남북 4개 대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침에 종루에 있는 종을 70회의 타종해 모든 성문이 열도록 하는 신호를 보냈고, 서쪽에 위치한 고루는 저녁에 울리는 것으로 큰 북이 울리면 모든 성문이 닫혔다고 한다.  

고루 옆에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인 회족의 시장인 ‘북원문 이슬람 시장’이 있다.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회족은 중국소수민족 중 하나지만 인구가 900만명에 달하며, 서안에만 5-6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소수민족 중에서는 다수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 화청지(華淸池)

화청지는 당 현종과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인 양귀비와의 특별한 로맨스와 비극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근대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서안사변의 현장이기도 하다.

화청지는 질 좋은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이 휴양지로 삼았으며, 일찍이 서주 시절 주유왕이 이곳에 여궁을 지었고 이후 진시황과 한무제도 여기에 행궁(行宮)을 건립했다.

특히 당 현종 때 건설한 궁전 누각이 가장 화려했고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 지하궁전 모형, 진시황릉, 병마용박물관

지하궁전은 사마천의 사기에 의거 재현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건축 당시 참여한 인원과 비빈들을 함께 산 채로 지하에 밀폐시켰다 한다. 진시황의 신비성과 상품성을 높이는 진시황릉(秦始皇陵)이다.

병마용 박물관 도착 직전 낮은 야산으로 보이는 것이 진시황릉이다. 진시황 즉위 때부터 37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주변의 둘레가 25km 정도 되는 거대 규모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로 산처럼 보인다.

진시황릉은 영화에 나올법한 ‘지하궁전’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 “수은이 흐르는 수백 개의 강이 큰 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돼 있다. 지하궁전 내부는 천상과 지상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또 궁전 입구에는 무단침입자에 대해 가차없이 화살이 자동 발사되도록 ‘부비 트랩’이 장치돼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진시황릉의 신비감을 더 높이고 있다.

2002년 12월에는 진시황릉의 신비를 벗기기 위한 대대적인 과학탐사가 시작됐다. 중국 당국은 진시황릉에 대해 지구물리 종합탐측기술을 이용한 원격탐지를 실시했다. 거액이 투입된 이번 조사에는 지면탄성ㆍ파동ㆍ자기파ㆍ고밀도전자파ㆍ중력 등 과학기술부가 개발한 최첨단기술이 총동원됐다.

이는 진시황릉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경계ㆍ모양ㆍ구조ㆍ깊이와 파괴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진시황릉 주변에는 ‘지하궁전’이 만들어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병마용 유적은 발굴된 그 자리에 박물관을 만드는 전통대로 지금도 계속 발굴을 하면서 발굴이 끝난 유물들을 계속 전시해 갈 예정이기 때문에, 사실 병마용 발굴이 언제 끝나고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다. 중국 당국은 지금 교외의 진시황릉과 거기서 1500m 떨어진 병마용 박물관까지 합쳐 외성이 6.2㎞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을 세울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는 병마용은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됐으며 7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과 100여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 여개의 병기가 발굴됐다. 병마용 갱은 총 4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졌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진시황릉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기원전 246년에 건설하기 시작해 37년 만에 간신히 완성됐다고 한다. 무려 70만 명이 동원된 대역사로, 완공 당시 전체 부지 50㎢, 봉분 높이 120m에 달했으며, ‘수은이 흐르는 수백 개의 강이 큰 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진시황릉과 달리 병마용의 존재는 2200여 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제대로 복원된 모습의 진흙인형도 있었지만, 아직 복원되지 않은 채 파괴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도 있었다.

중국정부는 1976년 1호갱 전시관을 시공했다. 1호갱 주변에서는 2호갱부터 4호갱까지 잇따라 발견됐다. 2호갱과 3호갱의 규모는 각각 6000㎡와 520㎡. 규모는 1호갱보다 작지만 군대 편제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병마용의 배치는 중국 고대 군대 편제와 같은 좌ㆍ중ㆍ우 3군으로, 1호갱은 좌군, 2호갱은 우군,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된다. 3군을 보급, 지원하는 4호갱도 있으나 완성되지 못한 채 빈 갱으로 남아있었다.

병마용은 머리와 몸통, 팔, 다리 등을 따로 빚은 뒤 조합해 구워 완성했다. 병사용은 키 175~195㎝의 늠름한 체격인데 실제 사람과 흡사하다. 병사들은 그 모습이 모두 다른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병마용 뒤쪽에 적어놓았다.

병마용은 발굴 및 수습, 복원, 전시 과정에서 적지 않게 훼손당했다. 병마용은 땅에 묻혀있을 당시 선명한 색채를 유지했지만, 발굴 후 산화되어 검게 퇴색했다. 또 1985년 1호갱 2차 발굴에서 출토된 장군용은 수습 과정에서 실수로 머리 부분이 부서졌다.

◈ 아방궁유지(阿房宮遗址)

아방궁은 서안과 중국, 중국역사를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진시황(秦始皇)의 황궁이다. 지금은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고 흔적만이 있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규모를 알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

서안시 서쪽 교외에 있는 이 유적지는 동서 2,500m와 남북 1,000m의 크기로 앞의 전(殿)과 뒤의 궁(宮),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의 유적지는 동서 1,300m와 남북 500m의 60만 평방미터의 면적으로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방궁의 건설은 한편으로는 황제의 위엄을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황제에게 알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정복하는 과정에서 경성(京城-북경), 함양(咸陽-서안)의 궁궐들을 다시 짓게 했는데 이것을 ‘육국궁전(六國宮殿)’이라 불렀다.

진시황의 황궁으로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 건물은 고증을 통해 옛 황궁을 1/10 수준으로 축소해놓은 것으로 세트장 수준으로 지어졌으며 공연장과 세트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화청지 양귀비 동상 앞에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혼자가도 즐겁고, 여럿이 가도 즐거운 여행, 좋은 사람들, 좋은 날씨, 좋은 풍광에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또다시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영천문화원 사무국장 이원석 ycn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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